Random.GG

여사친보드게임

여사친의 보드게임 전쟁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은주가 선언한 룰은 단순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결연함은 보드게임이 단순한 오락이 아님을 암시했다. 테이블 위에는 색색의 말과 카드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벽난로의 불빛이 은주의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번뜩이게 했다.

나는 6년 동안 '여사친'이라는 모호한 경계에서 은주를 바라봐왔다. 대학교 동기로 시작한 우리의 관계는 졸업 후에도 이어져, 매달 한 번씩 만나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식처럼 되었다. 그녀가 이기면 환호성을 지르고, 내가 이기면 재대결을 요구하는 패턴은 변함없었다. 오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뭐가 걸려 있는데?" 나는 주사위를 손에 쥐며 물었다. 은주의 제안에는 항상 작은 내기가 따라왔다. 지는 사람이 커피 사기, 다음 영화 티켓 사기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은주는 말없이 작은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뭔데?" 내가 묻자 그녀는 "게임이 끝나고 확인해." 라고만 답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전에 없던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우리는 평소보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전략에 몰두했다. 주사위 굴리는 소리와 말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테이블 위 보드게임 세계는 우리의 진짜 세계가 되었다. 은주의 손가락이 말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그녀의 다음 수를 예측하려 애썼지만, 오늘의 은주는 너무 예측불가능했다.

승부의 순간, 은주의 마지막 말이 결승점을 통과했다. "내가 이겼어." 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눈빛은 승리의 기쁨으로 빛났다. 나는 의자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보드게임의 여왕이네."

은주는 봉투를 집어들고 잠시 망설이다 내게 건넸다. "6년 동안 매달 48번의 게임을 했어. 내가 29번 이겼고, 너는 19번. 오늘까지 포함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봉투를 열자 두 장의 티켓이 나왔다. '하와이행 왕복 항공권'.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 다음 주에 미국으로 유학 가." 은주의 말에 내 심장이 멈춘 듯했다. "2년 과정이야. 가기 전에...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때 깨달았다. 6년 동안 우리가 한 48번의 게임은 단순한 보드게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였다. 승리와 패배, 전략과 위험, 기쁨과 실망. 우리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모든 것을 게임판 위에서 표현해왔다.

"이번엔 내가 진짜 이겼네." 은주가 미소 지었다. 나는 항공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게임의 진짜 승자는 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얻었으니까. 보드게임 위에서 춤추던 우리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인생이라는 더 큰 게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