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의 소설: 종이위에 피어난 진실
그녀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안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민지의 노트북이 고장 났을 때, 내 것을 빌려준 날, 실수로 열어둔 문서 파일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여름, 그리고 우리'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나는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분명 내 모습도 있었다.
"내가 여사친으로 불리는 게 얼마나 지독한 감옥인지 너는 알기나 해?" 소설 속 여주인공의 독백이 내 가슴을 찔렀다. 열 장 남짓한 원고를 읽는 동안 내 심장은 쿵쾅거렸고, 목구멍은 바싹 말라갔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여사친에게 잔인할 정도로 둔감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분명 나였다.
창밖으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소설 속 그녀의 눈물같이 느껴졌다. 민지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년 동안 '단짝 여사친'이라 불리며 지냈다. 모두가 우리를 연인 사이로 오해했지만, 나는 항상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그냥 친구야."
소설 속에서 민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친구의 연애 상담을 듣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 웃음 뒤에 숨겨둔 아픔, 그리고 결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강. 그녀의 문장들은 마치 오랫동안 썩은 상처에서 고름을 짜내듯 절절했다.
"이게 소설이면 좋겠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현실인 듯 현실 아닌 그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다음 날, 우리는 평소처럼 만났다. 카페에서 민지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었지만, 이제 나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미세한 떨림, 내 농담에 웃을 때 잠시 굳어버리는 입꼬리. 민지의 소설은 그녀 자신이었다.
"소설 잘 읽었어." 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눈이 커졌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냥... 작업 중인 거야. 별거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좋더라. 특히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 내가 말했다. "근데 난 다른 결말을 제안하고 싶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 순간 민지의 눈에서 이해의 빛이 번졌다. 우리의 여사친-친구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제 새로운 소설이 시작되려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 사람이 함께 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