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과 여친 사이: 불안한 경계선
그녀가 내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야 했다. 불과 5초 전, 카페 테이블 너머로 은지의 작은 손이 내 손등 위에 포개어졌을 때부터. 그 순간 내 뺨으로 몰려오는 열기를 진정시키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급하게 들이켰다.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현실을 일깨웠다. 그녀는 '단지' 여자사람친구일 뿐이다.
"민준아, 너 정말 웃긴다. 그렇게 고민하더니 결국 선물도 안 사왔네?" 은지가 웃으며 말했다. 카페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이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했다.
"서연이가 뭘 좋아할지 도통 모르겠어서..." 여자친구 서연의 생일을 앞두고 선물 조언을 구하러 온 자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연애 박사'로 통하는 은지에게 이런 상담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너희 벌써 3개월인데 아직도 서연이 취향을 모른다고? 내가 서연이면 헤어져버릴걸?" 은지의 말에 웃음 지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이상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그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나는 커피잔을 들었다.
은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사실 서연이가 어제 내게 전화했어. 네가 최근에 멀어진 것 같다고..." 그녀의 눈이 잠시 내 눈을 피했다. "혹시 다른 여자 생겼냐고 물어보더라."
갑작스러운 고백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카페의 소음이 일순간 멀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은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렇게 말했어. 민준이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그녀의 눈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근데 사실 궁금해.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서연이 맞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우리 사이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대학교 1학년 봄, 같은 교양수업에서 만나 4년간 이어진 우정. 그리고 2개월 전, 서연과의 소개팅에서 시작된 내 첫 연애. 이 모든 관계가 갑자기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나... 잘 모르겠어." 솔직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은지의 눈이 커졌다.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가득 채웠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은지의 표정이 굳었다.
"서연이네." 그녀가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받을까, 말까?"
우리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어쩌면 여사친과 여친 사이의 경계는, 내가 용기 내어 한 걸음만 건너면 되는 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 선을 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