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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친여행

여행 속 여사친: 경계의 모호함

버스가 굽이진 산길을 돌 때마다 소영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어졌다. 잠든 그녀의 숨결이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지만, 나는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15년간 '그냥 친구'였던 우리가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온 건, 어쩌면 우리 관계의 모호한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드는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야, 진짜 예쁘다." 소영이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쪽빛 바다 위로 햇살이 춤추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하지만 내 시선은 그녀의 미소를 좇고 있었다. 흰 원피스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빠, 나 여기서 살고 싶다." 소영은 현지 맛집에서 먹은 생선구이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주려다 멈칫했다. '여사친'이라는 딱지 앞에서 움츠러드는 내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갑작스런 비가 쏟아졌다. 우산 하나로 함께 뛰는 동안 그녀의 어깨가 내 가슴에 닿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라벤더 샴푸 향이 났다. 우리는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 담긴 불안을 서로 모르는 척했다.

"오늘 별 진짜 많다." 숙소 테라스에서 소영이 말했다. 소주 두 병을 비운 후였다. 그녀의 눈에 별이 반사되어 빛났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못 보는 것들이 있대. 별도 그렇고..."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사람도 그런가?"

마지막 날 아침, 소영은 내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여행 끝나고 열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 그녀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열어봤다. 안에는 우리가 대학 축제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짧은 글이 있었다. '다음 여행은 여사친으로 말고'.

귓가에서 엔진 소리가 커졌다. 창밖으로 작아지는 섬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여행은 떠나온 곳만큼이나 돌아갈 곳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가끔은, 15년 동안 그어놓은 선을 지우는 데 단 3일의 여행이면 충분하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