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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친판타지

여사친의 판타지: 현실과 환상 사이

강우가 눈을 떴을 때, 은채는 자신의 책상 위에 떠 있었다. 말 그대로 공중에 떠서, 연필로 허공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강우는 벌떡 일어나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5년 동안이나 여자 사친이었던 은채가 갑자기 초능력자가 된 것 같은 환각을 보는 게, 그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야 할 시점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강우야, 이불 좀 내려봐. 내가 설명할게." 은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마치 자신이 공중부양 중이라는 사실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인 듯.

강우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내렸다. 은채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고, 이제 책상 위에서 반짝이는 빛으로 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중력을 무시한 채 위로 솟구쳐 있었고, 손가락 끝에서는 별빛 같은 파편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은 두려움보다는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강우의 가슴을 채웠다.

"어... 은채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강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항상 네게 말하려던 비밀이야. 난 판타지 소설 속 마법사가 아니라, 실제로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야. 우리 종족은 호기심 때문에 인간 세계에 섞여 살아. 너와 친구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 은채가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말했다.

강우는 침을 삼켰다. 대학교 3학년까지 같이 공부하고, 술 마시고, 뒷담화했던 여사친이 외계 존재라니. 어쩐지 은채가 항상 시험 전날 공부 없이도 A+를 받았던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지금까지의 우정은... 다 거짓이야?" 강우의 목소리에 서린 상처가 은채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니, 절대 아니야. 내가 인간을 관찰하러 왔지만, 너와의 우정은 진짜야. 사실, 우리 종족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그런데 네가 내게 가르쳐줬어. 웃음, 눈물, 그리고..." 은채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사랑이라는 것도."

강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 5년간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사친이 외계인이라는 사실보다, 그녀도 자신에게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더 놀라고 있었다.

"내일 내 별로 돌아가야 해. 내 임무는 끝났어." 은채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너도 나와 함께 갈 수 있어. 내 세계는 네가 상상하는 모든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곳이야."

강우는, 자신이 평범한 대학생에서 이제 막 외계인과의 은밀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이 완전히 옳게 느껴졌다. 그는 은채의 손을 잡았고, 그 순간 그녀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어떤 환상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믿기로 선택한 것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