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여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
김태준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의 인생이 완벽한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3년간 그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자친구에 대해 모든 이에게 이야기해왔으니까.
"다음 주에 여친이랑 제주도 여행 가기로 했어." 대학교 동기들과 술자리에서 태준은 또다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손에 든 소주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거짓말이었다. 그는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된 '여자친구'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동기들은 태준의 여자친구가 얼마나 예쁜지, 어떻게 그런 여자를 만났는지 감탄했다. 아무도 그 사진이 온라인에서 무작위로 가져온 것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태준의 거짓말은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미팅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친구들은 하나둘 연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거짓말은 단순했다. "사실 여자친구가 생겼어." 그 순간의 달콤함이 태준을 중독시켰다. 친구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 갑자기 높아진 자신의 가치. 태준은 존재하지 않는 여자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서연.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도서관 구석,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SNS 알림. "김태준님,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태준이 만든 가짜 계정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혼자 앉아 있는 자신을 향한 동정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는 휴대폰으로 열심히 문자하는 척했다. 상대는 물론 없었다. 그저 메모장에 무의미한 글자들을 타이핑할 뿐이었다.
교수님께 제출할 레포트가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데도, 태준은 서연의 SNS 계정을 업데이트하는 데 시간을 썼다. 가끔은 자신이 만든 이 허구의 인물에게 실제로 말을 걸기도 했다. "오늘 힘들었어?" "어디서 만날까?" 그리고 스스로 대답했다. 점점 서연은 태준의 삶에서 실재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대학교 4학년, 취업 면접장.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면접관의 질문에 태준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부모님, 저, 그리고 여자친구입니다." 그 순간 자신이 한 말에 태준 스스로 놀랐다. 거짓말은 이제 그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취업 축하 파티에서 동기가 물었다. "태준아, 서연 씨는 왜 안 왔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태준의 머릿속에서 서연의 존재가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공포를 느꼈다. "우리... 헤어졌어." 태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기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태준은 자신이 애도하는 것이 실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의 종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 태준은 서연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SNS 계정, 사진, 저장해두었던 가짜 대화들. 마지막으로 휴대폰 연락처에서 '서연♥'을 삭제하는 순간, 태준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진짜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태준은 대학교 캠퍼스를 걸으며 결심했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없다.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그때 우연히 마주친 시선. 도서관 앞에 서 있던 여학생이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태준은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태준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그는 거짓말 없이 자신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