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의 마지막 보드게임
다이스를 굴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질 때마다,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민수는 주사위 눈을 확인하며 게임판에서 자신의 말을 움직였다. 그의 건너편에 앉은 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두 번째 기념일, 민수가 선물한 보드게임을 하는 이 순간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두 사람 다 답을 알고 있었다.
"네 차례야." 민수가 말했다. 둘이 함께 모은 49개의 보드게임 중 지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골랐다. 지현의 손가락이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다가 굴렸다.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가 테이블 다리에 부딪혀 멀리 굴러갔다.
"미안," 지현이 주사위를 줍기 위해 몸을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긴 머리가 앞으로 쏟아져 내렸고, 민수는 이 모습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지현의 손에서 주사위는 5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움직이며 벌금 칸에 멈췄다.
"또 걸렸네," 민수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처음 데이트 때 민수는 보드게임 카페로 지현을 초대했었다. 지현은 게임마다 벌금 칸에 걸려 결국 게임비를 다 내야 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지현이 말했다. 민수는 그녀가 게임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그들의 관계를 의미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두 가지 모두 맞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그들의 시간을 재고 있었다. 민수는 게임판을 바라보았다. 지금 게임에서 그는 이기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에서는 이미 패배한 듯했다.
"우리..." 민수가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것 같았다.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말을 만지작거렸다. "게임에서는 리셋 버튼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없어."
민수는 자신의 주머니를 더듬었다. 오늘 프러포즈를 위해 준비한 반지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그저 쓸모없는 금속 조각처럼 느껴졌다.
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빗방울에 젖은 유리창이 그녀의 실루엣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사랑도 게임처럼 규칙이 있어. 하지만 우리는 둘 다 너무 다른 규칙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아."
민수는 게임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색색의 게임 말들을 상자에 넣을 때, 각각은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완성되지 못한 게임처럼, 그들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다시 돌아온 지현이 민수의 옆에 앉아 게임 정리를 도왔다. 그들의 손가락이 우연히 닿았을 때, 둘 다 움찔했다. 민수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고, 그곳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보았다. 결심이 아닌, 망설임. 확신이 아닌, 의문.
"마지막으로 한 게임만 더 할까?" 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엔 내가 고를게."
지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상자에서 '인생게임'을 꺼냈다. 어쩌면 게임판 위에서라도,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