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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소개팅

운명의 소개팅: 여친의 비밀

"네 여친 소개팅 주선해달라는 부탁, 농담인 줄 알았어."

친구 민수의 말에 나는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었다. 카페 안을 메우던 부드러운 재즈 선율이 갑자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내리는 가을비가 유리창에 무늬를 그려내는 동안, 나는 숨을 고르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지연이가 정말 자기 친구한테 소개팅을 주선해 달래? 내가 여자친구라는 걸 알면서?" 내 목소리에는 당황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민수는 머뭇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여줬다. 액정 속에는 분명 지연이의 이름과 함께 '오빠 아는 사람 중에 괜찮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제발요.' 라는 문장이 선명했다. 커피의 쓴맛이 갑자기 혀끝에서 독처럼 느껴졌다.

1년 2개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다. 아침마다 깨워주는 '잘 잤어?' 메시지부터 저녁의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인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전화해봐. 오해일 수도 있잖아." 민수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몇 시간 전 지연이와 나눈 문자를 다시 읽었다. '오늘 회사 일이 많아서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자요.' 거짓말처럼 보이는 평범한 문장.

카페를 나와 빗속을 걷는 동안, 의심이 비처럼 나를 적셨다. 우산도 펴지 않은 채 걸었다. 지연이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오빠?" 지연이의 놀란 얼굴. 우산을 든 그녀의 모습.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외출 준비를 마친 차림새.

"소개팅 가?" 내 질문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오빠가 어떻게..."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몰려왔다. 돌아서려는 순간, 지연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오해하지 마요. 소개팅 맞는데..." 그녀가 말을 잠시 멈추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빠 생일 선물로 줄 반지를 골라줄 남자 친구가 필요했어요. 여자들은 다 내 취향만 고르니까... 민수 오빠한테 부탁한 거예요."

그녀의 가방에서 꺼낸 수첩에는 보석상 주소와 함께 '남자 시각으로 고를 것' 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비에 젖은 내 얼굴 위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비가 그친 한강변을 걸었다. 내가 소개팅 상대가 될 뻔했던 지연이 친구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지연이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에게도 장문의 항의 문자를 보냈다. 진실을 가르쳐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한 달 후, 내 생일날. 나는 지연이가 고른 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다. 가끔은 오해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