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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소설

여친의 소설: 우리가 쓰지 않은 이야기

그녀의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화면 가득 차 있는 글자들이 나를 불러들였다. 우리의 이야기였다. 아니, 우리가 아닌 다른 우리의 이야기였다.

"다시 한번 묻는다. 너는 날 사랑하니?"

화면 속 대화는 분명 우리의 것이었지만, 결말은 달랐다. 현실에서는 내가 침묵했던 그 순간, 소설 속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안아주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커피 잔을 들었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것이 그녀가 바랐던 결말이었나?

그녀의 소설에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어제의 다툼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모든 장면이 조금씩 다르게 펼쳐졌다.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 그녀가 기다렸던 행동들이 소설 속에서는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소설 속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고, 문제를 함께 해결했으며,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다.

창문 너머로 가을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녀의 연한 향수 냄새가 책상 위에 남아있었다. 열린 노트북 옆에는 반쯤 마신 카모마일 차가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차를 다 마시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리자 더 많은 장면들이 나왔다. 우리의 여행, 일상, 다툼, 화해...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까지. 소설 속에서 우리는 결혼했고, 작은 집을 샀으며, 아이도 있었다. 그녀의 상상력인지, 희망사항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아파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 속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네가 쓰는 이야기까지도." 화면이 거기서 끝났다. 파일명은 '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docx'였다.

욱신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했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비에 젖은 그녀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노트북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기다렸어?" 그녀가 물었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 평소와 같은 미소였지만, 이제 나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았다.

"아니, 방금 왔어." 거짓말이 쉽게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빛이 잠시 내 뒤 책상 위 노트북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그 짧은 순간, 우리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날 밤, 나는 내 노트북을 열고 새 문서를 만들었다. 첫 문장을 적었다. "그녀의 소설이 열려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진짜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