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여행: 출근길에서 만난 무한한 가능성
그날 아침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근길이었다. 아니, 달랐다.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느껴졌던 이 낯선 설렘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눈 밑의 다크서클과 구겨진 셔츠, 대충 묶은 넥타이까지. 5년째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어제 잠들기 전에 본 여행 다큐멘터리의 영향일까. 저 멀리 모로코의 푸른 도시 쉐프샤우엔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하철 안은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습한 열기와 섞인 향수 냄새, 누군가의 커피 향. 하지만 이제는 이 익숙한 냄새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미지의 시장을 탐험하는 여행자처럼, 매일 타던 이 지하철이 낯설게 느껴졌다.
"잠시만요, 문 좀 잡아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사내 식당에서 종종 마주치던 마케팅팀 여자였다. 그녀가 숨을 고르며 내 옆에 섰다. 손에는 '세계 일주 배낭여행 계획'이라고 적힌 노트북이 들려있었다.
"여행 계획 세우세요?" 평소의 나라면 절대 건네지 않았을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네, 6개월 뒤에 퇴사하고 세계 일주를 할 거예요. 꿈이었거든요."
그 순간 지하철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린 것은 내 세계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이 출근길이 갑자기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갈림길이 있는 미로.
"멋지네요. 저도 사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나조차 놀라게 했다. "전 히말라야 트레킹을 꿈꾸고 있어요."
처음으로 말한 비밀이었다. 데스크탑 화면 보호기로 설정해둔 에베레스트 풍경, 점심시간마다 몰래 검색하던 네팔 가이드북. 그것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다음 역은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기계적인 안내방송이 울렸다. 우리의 회사가 있는 역이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 "여행 동호회 모임이 있어요. 와보실래요?"
명함을 받아들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평소와 같은 출구로, 평소와 같은 횡단보도를 건너, 평소와 같은 회사 건물로 향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회사 로비의 대형 세계지도가 오늘따라 유독 선명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지나쳤던가.
엘리베이터에 올라 15층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출근길은 매일 반복되는 여행이었다. 같은 길, 같은 풍경, 같은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나는 이 출근길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떠날 그날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사무실 문을 열기 전, 주머니 속 명함을 꾹 쥐었다. 오늘의 출근은 끝이 아닌, 새로운 여행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