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시간, 여사친의 비밀
땀방울이 눈썹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그녀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10년지기 여사친 지민은 언제나처럼 완벽한 포니테일과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지만, 오늘따라 그 눈빛이 달랐다.
"진우야, 오늘은 진짜 이기면 안 돼. 내기 걸었어." 지민의 목소리에는 평소엔 없던 긴장감이 묻어났다. 우리의 주간 농구 대결은 1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대학교 체육학과 동기로 만난 우리는 매주 수요일, 이 낡은 체육관에서 1대1 매치를 벌였다.
공이 바닥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지민의 운동화가 마룻바닥에 마찰하며 내는 끽끽 소리, 숨을 고르는 거친 호흡 소리, 그리고 농구 골대의 그물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평소보다 공격적인 지민의 플레이에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눈에서 결의가 번뜩였고,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대체 무슨 내기길래 이렇게 필사적이야?"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지민은 대답 대신 드리블을 이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점프 슛을 시도했지만, 나는 몸을 날려 블로킹했다. 우리의 몸이 잠시 공중에서 부딪혔고, 서로의 호흡이 섞였다. 그 순간 지민의 눈에서 무언가 깊은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사실... 내가 회사 동료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네 얘기가 나왔어." 지민이 공을 잡으며 머뭇거렸다. "그들이 너와 내가... 그냥 친구로만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게 신기하대. 그래서 내가 오늘 이기면 너한테... 고백하기로 했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나눈 수천 번의 대화, 함께한 수많은 시간들, 서로의 연애 상담을 해주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민은 내 인생의 일부였지만, 한 번도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소중한 관계가 망가질까 봐.
경기는 계속됐다. 19:19 동점. 다음 한 골이 승부를 가를 차례였다. 지민의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렸고,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의 드리블이 평소보다 빨라졌다. 순간적으로 나는 왼발에 힘을 주고 점프했다. 공중에서 공을 움켜쥘까 말까 하는 찰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진다면?'
경기가 끝난 후, 우리는 체육관 바닥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지민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찾아왔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이겼네," 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오늘 진 것은 경기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정말 원했던 패배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