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여사친: 웃음 뒤에 숨겨진 진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없어." 정우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6년 동안은.
소희는 내 옆자리에 앉아 다시 한번 폭탄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커피숍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캐러멜 마키아토처럼 달콤하면서도 쓴맛이 감돌았고, 나는 그 소리에 중독된 지 오래였다.
"야, 민석아, 내 얘기 듣고 있어?" 그녀가 내 팔을 툭 쳤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재킷을 뚫고 피부까지 스며들었다.
"응, 그 부장님이 또 망신당했다고?"
"아니, 그 다음 얘기! 정신 좀 차려." 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코 위에 앉은 작은 주근깨가 살짝 움직였다. 내가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다. '재밌는 여사친'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그녀는 내 옆에 있었다. 함께 밤새 과제하고, 시험 기간에 라면 끓여 먹고, 취업 준비를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녀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고, 내 실패한 소개팅 얘기를 나눴다. 완벽한 우정이었다.
"이번 주말에 같이 영화 볼래?" 소희가 물었다.
"미안, 이번엔 못 갈 것 같아. 소개팅 있어."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가 금세 환해졌다. "와, 드디어! 누구야? 예쁘대?"
"정우 동생이래. 사진 봤는데 괜찮아 보여."
소희는 과장되게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커피잔을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정우의 메시지가 왔다. "소개팅은 취소됐어. 근데 너 바보야? 소희가 널 좋아한다고 6년째 말하고 있잖아."
창밖으로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그녀의 웃음소리, 장난스러운 눈빛, 내가 우울할 때 보내는 재밌는 밈들, 아플 때 끓여주던 죽,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커피숍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없어. 다만 그걸 깨닫는 데 6년이 걸릴 수도 있지."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 살짝 풀어진 스카프,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 그녀의 눈이 내 메시지를 확인하고 놀라움으로 커졌다. 이제야 알았다. 가장 재밌는 여사친은 한 번도 그냥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