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출근: 그녀가 내 여친이 되기까지
그날 아침도 난 평소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회사에 출근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건 회사 사원증이 아닌 카페 포인트 카드뿐이었다. 6개월째 반복되는 위장 출근이었다.
9시 정각, 늘 그렇듯 이 카페에 도착해 구석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치고 이력서를 수정하는 척, 취업 포털을 검색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시간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실직 사실을 부모님께 차마 알리지 못한 채,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연극을 이어갔다.
카페의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로스팅된 원두와 우유 거품의 달콤함이 섞인 공기 속에서 난 하루의 시작을 맞았다. 오늘도 그녀는 정확히 9시 15분에 카운터에 섰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 얼굴의 반을 가리는 뿔테 안경, 항상 입는 듯한 오버사이즈 니트. 나는 그녀의 일상을 외울 정도로 지켜봐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용했다. 음료를 받아 항상 앉는 창가 자리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오늘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날 오후,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가 계획을 바꿔놓았다. 우산을 두고 온 그녀가 카페 출입구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내 우산을 건네려 다가갔을 때, 그녀의 모니터에 떠 있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취업 준비생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트. 그리고 그녀의 글.
"6개월째 부모님께 취업했다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정장 입고 카페로 출근하는 제 모습이 너무 비참해요..."
우산을 내려놓고 문득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도 6개월째요. 똑같이."
그렇게 우리의 첫 대화가 시작됐다. 우리는 서로의 가짜 회사 생활, 부모님께 둘러댔던 거짓말들, 면접에서 떨어진 횟수를 비교하며 웃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웃음이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진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 모의 면접을 하고, 이력서를 검토해주고, 때로는 서로에게 너무 가혹했던 하루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녀가 먼저 취업 소식을 전했다. 이틀 후엔 나에게도 합격 통보가 왔다.
우리의 마지막 위장 출근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제 진짜 출근이네요. 근데... 이 카페 데이트로 와도 될까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아침, 우리는 그 카페에서 만난다. 진짜 연인이 되어, 거짓말로 시작된 우리의 출근길을 함께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