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오컬트: 지하철 9호선의 비밀
출근길 지하철의 문이 닫힐 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아차린 건 정확히 42번째 평일이었다. 숫자를 세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7시 23분, 9호선에 몸을 실을 때마다 나는 같은 차량, 같은 좌석에 앉았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대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오늘도 보이시네요." 맞은편에 앉은 노인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노인의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까만 우물 같았고, 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죄송하지만... 저를 아세요?" 내 질문에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모르나 보군. 매일 이 시간, 이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조금씩 현실에서 지워진다네. 벌써 당신의 30%가 이쪽으로 넘어왔어."
등줄기로 한기가 내려갔다. 스마트폰을 켜서 셀카모드로 확인했다. 화면 속 내 모습은 분명 희미했다. 마치 흐릿한 필터를 씌운 것처럼.
"이쪽이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세상은 두 개야.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세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경계를 넘어가지. 당신의 영혼이 일상에 갇히면서 진짜 세계로 흡수되고 있는 거야."
노인의 손이 내 팔을 스쳤고, 그 순간 지하철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다른 승객들의 입은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어디선가 기계가 작동하는 둔탁한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괴이한 속삭임이 귓가를 채웠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열차, 같은 좌석... 그리고 똑같은 회사에서 반복되는 일상. 당신은 자신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어. 곧 완전히 이쪽으로 오게 될 거야."
공포에 질려 일어서려는 순간, 열차가 급정거했다. 모두가 앞으로 쏠렸지만, 나는 그대로 관성의 법칙을 무시한 채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 몸이 물리 법칙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오싹했다.
"오늘 회사에 가지 마시게. 루틴을 깨뜨려야 해. 평소와 다른 일을 해보게. 그래야 당신의 영혼이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는 걸 막을 수 있어."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하철 문이 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내 정류장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 열차에 있을 수 없었다. 역 플랫폼에 서서 뒤돌아보니, 노인은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열차가 떠나갈 때, 노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그날 나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평생 미뤄왔던 미술관을 찾았고,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저녁이 되어 거울을 보니 내 모습이 선명해져 있었다.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열차를 탔을 때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내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자신의 희미한 반영을 불안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야 할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출근길의 오컬트는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