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혹은 회사: 매일의 선택
출근길, 그날따라 모든 신호등은 빨간색이었다. 마치 세상이 "가지 마, 돌아가" 속삭이는 것처럼. 하지만 윤재는 항상 그랬듯 무시했다.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출근 30분 전임에도 이미 10개의 읽지 않은 회사 메시지가 쌓여있었다.
"오늘도 시작이군." 그는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20층짜리 유리 건물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마치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윤재는 그 안에 있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커피 향과 프린터 잉크 냄새가 섞인 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창백했다. 윤재의 자리에는 이미 처리해야 할 서류 더미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윤재 씨, 오늘 임원 회의 자료 준비됐죠?" 팀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제 밤 11시까지 남아 완성했던 자료였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지시사항이 좀 바뀌었어요. 3시까지 수정본 부탁해요."
점심시간, 윤재는 구내식당 창가에 앉아 바깥세상을 바라보았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노인들, 자유롭게 웃고 떠드는 관광객들, 그리고 따스한 햇빛. 그의 샐러드는 반쯤 남았지만, 휴대폰 알림은 이미 회의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오후 회의실에서, 윤재는 문득 깨달았다. 이 방 안의 모두가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눈은 서류를 보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이번 분기 목표는 전년 대비 30% 성장입니다." CEO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우리는 함께라면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윤재는 문득 자신의 책상 서랍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3년 전 작성한 사직서가 있었다. 매일 출근길에 내밀까 고민하다 결국 서랍에 도로 넣어두곤 했던.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윤재는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낡은 종이를 꺼내들며 그는 문득 질문했다. "나는 왜 매일 이곳에 출근하는가?"
그날 저녁, 늦은 퇴근길에 윤재는 회사 건물을 뒤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불빛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는 다른 선택을 상상해보았다. 출근하지 않는 내일, 회사가 없는 미래를.
그의 손에는 여전히 사직서가 들려있었다. 내일, 그는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면 정말로 멈춰 서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