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괴담: 이세계의 목소리
지하철역 맨 끝 계단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건 그날이 세 번째였다. "이쪽으로 와요." 달콤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이끌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도시의 괴담은 흔했다. 심야의 지하철역에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목소리가 내 죽은 여동생 세아의 목소리라면? 세 달 전 사고로 잃은 동생의 음성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이성을 잃지 않을까.
"오빠, 여기 너무 예뻐. 꼭 네가 읽어주던 판타지 소설 속 세계 같아." 계단을 내려갈수록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형광등이 깜빡이는 지하철 통로는 한밤중에 으스스했다. 벽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두 개로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하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모양새였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평소에는 없던 문이 나타났다. 녹슨 철문 틈새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눈 앞에 펼쳐진 건 내가 아는 지하철역이 아니었다. 거대한 수정 기둥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발 아래로는 형광색 이끼가 빛나는 길이 이어졌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마침내 왔구나, 오빠." 세아가 환하게 웃으며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내가 기억하는 갈색이 아닌 보라색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물었다. "판타지 세계야. 네가 항상 동경했던 곳. 여기선 죽은 사람도 살아 돌아올 수 있어."
세아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우리는 빛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곳곳에서 우리처럼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걷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영혼 없는 허수아비처럼.
"저 사람들은 뭐야?" 내가 물었다. 세아는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동생의 손이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내 팔의 색이 조금씩 창백해지고 있었다. 내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세아... 너 정말 세아 맞아?" 내가 물러서자 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점점 커지더니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이제 늦었어, 오빠." 목소리는 더 이상 세아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달렸다. 온 힘을 다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뒤에서는 이제 세아의 모습이 아닌 무언가가 쫓아왔다. 철문이 보였다. 나는 문을 향해 뛰었고,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눈을 떠보니 지하철역 계단 앞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였다. 환각이었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내 그림자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더 이상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