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과 여사친: 우리가 진짜 찾던 트레이너는
딱 한 번, 그것도 딱 한 번만 진실을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놓쳐버렸다. 피카츄 인형을 든 채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십 년간 함께한 여사친 유진이 갑자기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민준아, 이거 봐! 오늘 오픈한 포켓몬 팝업스토어에 첫 번째로 입장해서 한정판 피카츄 인형 받았어!" 유진이 환하게 웃으며 노란 인형을 내 얼굴 앞에 흔들었다. 그 인형의 검은 구슬 같은 눈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포켓몬을 좋아했다. 포켓몬 카드를 교환하고, 게임을 함께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밤을 새우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 열정은 식지 않았다. '여사친'이라는 말이 우리 관계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그녀였고, 그녀에겐 나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데 어떻게 첫 번째로 들어갔어? 오픈 세 시간 전부터 줄 섰다며." 내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의심을 숨기지 못했다.
유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 그게... 진호랑 같이 갔거든. 걔가 새벽부터 줄 서 있었대."
진호. 우리 학교 반에서 제일 인기 많은 남자애. 그리고 유진이 최근에 자주 언급하는 이름. 갑자기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웃긴 거 알아? 진호도 어렸을 때 포켓몬 좋아했대. 우리처럼!" 유진이 해맑게 말했다.
'우리처럼'이란 말이 가슴을 찔렀다. 그 '우리'는 이제 깨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시선을 피하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근데 오늘 같이 영화 보기로 하지 않았어?"
"아, 맞다! 미안, 진호가 갑자기 포켓몬 카페 오픈했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영화는 다음에 봐도 될까?"
그 순간 깨달았다. 유진에게 포켓몬은 이제 나와의 추억이 아닌, 진호와의 새로운 연결고리였다. 어쩌면 모든 관계는 이렇게 진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포켓몬이 레벨업하며 형태가 바뀌듯이.
"그래, 다음에 보자." 내가 말했다. 그녀가 떠나고 난 후, 서랍을 열어 오래된 포켓몬 마스터볼 모양 친구 목걸이를 꺼냈다. 유진은 피카츄 모양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포켓몬이 되기로 약속했었다.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유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민준아, 진호가 나 좋아한대. 어떡하지?"
이제 말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망설였다. 결국 나는 "진호 좋은 애잖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답장했다.
때론 가장 강한 트레이너도 자신의 포켓몬을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다. 그날 밤, 창문 너머로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포켓볼 안에 갇히기를 기다리는 포켓몬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한 트레이너는 붙잡는 법보다 놓아주는 법을 먼저 배운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