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소설: 피부에 새겨진 문장들
하루가 끝날 무렵, 그녀의 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들은 모두 소설의 한 페이지였다. 서른두 살 민지는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10년째 일하며 수천 개의 얼굴을 만져왔다. 그리고 그 얼굴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왔다.
"이건 당신에게 딱 맞는 색이에요." 민지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에게 코럴빛 블러셔를 건넸다. 여자의 눈가에는 베이지색 컨실러로도 가려지지 않는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손톱은 반쯤 물어뜯긴 채였다. 빨간 루즈를 테스트하는 여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 마지막으로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요." 여자가 속삭였다. 민지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 여자의 소설은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고. 민지는 시간을 끌기 위해 더 많은 제품을 보여주었다. 화장품 하나하나가 여자의 얼굴에 닿을 때마다 그녀의 눈에 미세한 빛이 돌아왔다.
"이 아이크림은 밤새 당신의 피부가 이야기를 쓰게 해줄 거예요." 민지는 의도적으로 소설적인 표현을 썼다. 여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일 아침, 거울을 보면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거예요."
그날 이후 민지는 그 여자를 다시 보지 못했다. 하지만 3개월 후, 활기찬 걸음걸이의 여성이 찾아왔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기억하세요? 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날, 당신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그날부터 민지는 자신이 파운데이션과 립스틱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새 챕터를 선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와 색조 화장품을 찾는 여학생에게는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핑크 글로스를, 이혼 후 처음으로 데이트를 앞둔 중년 여성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레드 립스틱을, 암 치료 후 빠진 눈썹을 가리러 온 할머니에게는 따뜻한 브라운 아이브로우를.
민지의 화장대 위, 브러쉬 한 자루마다 누군가의 삶을 바꾼 순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오늘, 민지는 자신의 소설을 쓰기로 했다. 십 년간 화장품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써왔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던 그녀는 처음으로 붉은 립스틱을 자신의 입술에 바르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제 내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이야."
거울 속 민지의 입술이 반짝였다. 누군가의 얼굴에 화장품으로 쓰던 소설이 이제 그녀 자신의 삶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들고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첫 문장을 써내려가는 펜촉처럼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