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데이트: 네 글자 뒤에 숨은 진실
인스타그램에 INFP라고 적힌 그의 프로필을 발견한 순간, 나는 이상하게 안도했다. 적어도 소개팅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구석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내향형이라니, 나의 ENFJ 본능이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고 속삭였다.
"혹시 민준 씨?" 내가 물었다. 그는 약간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어떤 이상한 예감이 나를 스쳤다.
"네, 지연 씨죠? 반가워요." 그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또렷했고, 눈을 마주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수줍음을 타는 INFP와는 조금 달랐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좋아했고, 내 이야기에 집중하며 적절한 시점에 맞장구를 쳤다.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졌다. 내향적이지만 분석적인... INTJ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MBTI에 관심이 많으세요?" 내가 슬쩍 물었다.
"아, 그거요?" 그가 웃었다. "사실 제 프로필에 쓴 거, INFP 맞긴 한데..."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매칭률이 더 높아서요. 실제로는 ESTJ거든요."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그를 쳐다봤다. "매칭률이요?"
"네. 데이팅 앱에서 통계를 봤는데, INFP라고 하면 매칭률이 30% 정도 올라간대요. 요즘 다들 부드럽고 감성적인 남자를 좋아하니까..." 그의 말에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전형적인 ESTJ의 효율성 추구.
"그럼 다른 것도 다 꾸민 거예요?" 내가 물었다.
"아뇨, 나머지는 다 진짜예요. 그냥..." 그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첫인상이 중요하잖아요."
그 순간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프로필 사진 속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그의 'INFP'라는 네 글자에 끌려왔던 건 아닐까? 나 자신도 성격 유형이라는 네 글자에 사람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저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ENFJ가 아니라 ISTP예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커피숍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네 글자로 정의될 수 없는 모든 복잡한 자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데이팅 앱에서 MBTI 필터를 삭제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16가지 유형이 아니라, 그 유형을 벗어나 진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