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소개팅: 알파벳 네 글자의 함정
그녀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물었다. "당신 MBTI가 뭐예요?" 아직 메뉴판도 펴보지 못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구나.
"저는... 그런 거 별로 안 믿어요." 내 대답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레스토랑의 촛불이 그 흔들림을 더욱 강조했다.
"아, 그래요? 보통 INTP들이 그렇게 말하던데." 그녀는 와인 잔을 들어올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소개팅은 회사 동기 민지가 주선했다. "너랑 찰떡궁합일 거야, 진짜로!" 그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테이블 위에는 고급 레스토랑의 향신료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고, 주변에서는 포크와 나이프가 도자기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ENFJ예요, 저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궁합 최악이래요, 알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안 믿어요." 그녀는 웃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그녀는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MBTI로 분석했다. "역시 INTP답게 논리적이시네요." "아, 그건 당신 inferior Fe가 나타난 거예요."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니라 알파벳 네 글자로 된 알고리즘처럼 느껴졌다.
디저트가 나왔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MBTI 말고,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은 뭐예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촛불 아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실... 사람들이 저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게 ENFJ라고 말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테스트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그 순간 테이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민지였다. '어때? 찰떡이지? MBTI 계산기로 확인해봤는데 94% 일치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다음에는 MBTI 얘기 안 하고 만날래요?" 내가 물었다.
"좋아요, 대신 별자리로 분석해드릴게요." 그녀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우리는 알파벳 네 글자로 정의될 수 없는, 더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계산서에 사인하며 속삭였다. "참, 제 진짜 MBTI가 궁금하신가요? 다음 데이트에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