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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여사친

MBTI의 덫: 여사친의 비밀

현수의 INFP와 지현의 ESTJ는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할 수 없는 두 개의 태양 같았다. 적어도 그가 그렇게 믿기 전까지는.

"나랑 여사친 관계로 지내자." 지현이 처음 그런 제안을 했을 때, 현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학교 3년 내내 짝사랑해온 그녀가, 그것도 MBTI 동아리 MT에서 술에 취해 벌어진 고백 이후에 내민 제안이었다. 여사친. 그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네가 INFP라서 그래." 지현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내가 계획성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할 때마다, 감정에 휩쓸려 논리적 판단을 놓칠 때마다. 그녀의 ESTJ 성향은 마치 보호막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 견고한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여름의 끝자락, 우리는 한강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불빛이 강물에 일렁이고, 멀리서 들려오는 버스커의 기타 소리가 밤공기를 적셨다. 지현의 향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가끔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가 단순한 '여사친' 관계가 아닌 것 같은,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것 같은 순간들.

"현수야, 나 사실..." 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ESTJ라고 했잖아."

"응, 뭐 백번은 들었지."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강바람이 갑자기 더 차갑게 느껴졌다.

"나도 INFP야. 우리 첫 동아리 모임 때, 네가 자기소개하면서 INFP라고 했을 때... 네가 너무 멋있어 보였어. 그런데 다른 애들이 'INFP는 너무 감성적이라 피곤하다'고 수군거리는 걸 들었어. 그래서 반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완벽한 ESTJ 캐릭터를 연기했지."

지현의 고백은 내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3년 동안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고 생각했던 MBTI의 벽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같은 유형, 같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왜 여사친으로만 지내자고 했어?"

지현은 처음으로 자신의 INFP 본성을 드러내며 울먹였다. "두려웠어. 내가 만든 가짜 페르소나가 들통 날까 봐. 네가 진짜 나를 알게 되면 실망할까 봐."

그날 밤, 우리는 MBTI라는 네 글자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벽을 부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지에 대해 밤새 이야기했다. 여사친이라는 안전한 경계선 뒤에 숨어 있던 우리의 진짜 감정들이 마침내 표면 위로 떠올랐다.

지금도 가끔, 지현의 MBTI 테스트 결과가 INFP보다 ESTJ에 가깝게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어쩌면 MBTI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처럼, 여사친이라는 관계처럼 - 단순한 네 글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색채와 감정들이 그 안에 담겨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