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을 기다리는 남편
김부장은 매일 저녁 9시, 부엌 식탁에 앉아 팔짱을 끼고 내가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를 기다린다. 그 소리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에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그의 침샘을 자극한다. 20년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의식이었다. 매일 밤 그는 간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남편을 위해 매일 밤 냉장고 문을 연다.
오늘 저녁엔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푸딩이었다. 스푼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젤리 같은 질감, 그 위에 얹은 붉은 딸기 한 조각. 김부장은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바라봤다. 나는 그의 앞에 푸딩을 놓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깔린 20년의 침묵은 다시 한번 견고해졌다.
"오늘은 달콤하네." 그가 말했다. 항상 먹는 것에만 관련된 대화였다. 날씨, 아이들, 내 하루가 어땠는지... 그런 것들은 물어본 적이 없다. 오직 간식과 그 맛에 대한 감상만이 우리 사이에 오갔다.
냉장고에 손을 넣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간식 말고 다른 것을 줘본 적이 있었던가? 사랑? 관심? 이해? 그리고 그는 나에게 무엇을 주었나? 매일 밤 반복되는 이 의식은 우리 관계의 전부인가?
어젯밤,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새벽 세 시, 주방에서 찬장을 열고 과자 봉지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김부장이었다. 그는 혼자서 간식을 찾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의식이 무너진 것 같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식탁에 앉았다. 마주 보고.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 내가 만든 간식 말고 다른 것도 먹고 싶은 거 있어?"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푸딩을 한 숟갈 떠먹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깊은 눈빛이었다.
"사실... 난 간식을 기다린 게 아니야. 당신이 내게 뭔가를 주는 그 순간을 기다렸어. 그게 내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거든."
빈 그릇만 남은 식탁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야 알게 됐다. 우리가 20년 동안 나누었던 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였음을. 나는 내일의 간식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처음으로 남편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