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 뉴진스: 그 시절의 플레이리스트
오래된 하드 드라이브에서 발견한 '남친 ♡' 폴더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열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은 이미 더블클릭을 완료한 후였다.
2023년 여름, 우리는 뉴진스의 'Super Shy'를 들으며 한강변을 달렸다. 윤호의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던 그 순간들이 화면 속 사진들로 쏟아져 나왔다. 에어컨도 소용없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서로의 옷에 묻혀 웃던 날, 도서관에서 몰래 이어폰을 나눠 끼고 'ETA'를 들으며 눈짓으로 대화하던 순간, 그의 생일에 뉴진스 콘서트 티켓을 건네며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
"이 노래 들으면 항상 네가 생각날 거야," 윤호는 'Hype Boy'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어떤 노래가 한 사람과 영원히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때는 그저 로맨틱한 말에 불과했다.
스크롤을 내리자 10월의 사진들이 나타났다. 단풍이 물든 남산에서 우리는 'Attention'을 흥얼거리며 미래를 계획했다. "대학 졸업하면 같이 여행 가자. 너 좋아하는 뉴진스 콘서트도 일본에서 보고." 약속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디지털 타임라인은 12월에 갑자기 끊겼다. 마지막 사진은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첫 큰 싸움을 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말다툼이 어떻게 그렇게 커졌는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에 그가 "너랑 나는 서로 다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인가 봐"라고 말했던 것만 선명하다.
새해가 되고 윤호는 교환학생으로 떠났다. 처음엔 매일 연락했지만, 점점 메시지 사이의 간격이 길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인스타그램에 낯선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캡션에는 "Ditto"라고만 써있었다. 뉴진스의 노래 제목이자, '동감한다'는 의미의 단어. 무엇에 동감한다는 걸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 후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폴더를 닫으려다 발견한 작은 텍스트 파일. '윤호를 위한 플레이리스트.txt'였다. 열어보니 내가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들 목록이었다. 마지막 곡은 아직 발매되지도 않은 뉴진스의 신곡 제목이었다. 그때는 그 노래를 함께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깜빡였다. 스마트폰을 열어 음악 앱을 실행했다. 뉴진스의 새 앨범이 상단에 떠 있었다. 주저하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멜로디가 방 안을 채웠다. 노래는 변했지만, 그 노래를 듣는 내 마음은 여전히 2023년 여름에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