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간식: 우리가 몰랐던 사랑의 언어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새벽 세 시. 남편의 그림자가 부엌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또 그 습관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발견한 건 결혼 5년 차, 남편의 서랍장을 정리하다가였다. 양말 속에 숨겨진 초콜릿 바, 책장 뒤에 감춰진 과자 봉지들. 마치 비밀 요원처럼 집 곳곳에 간식을 숨겨두는 그의 습관은 내게 어이없는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작년부터 시작한 그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여보, 이게 다 뭐야?" 증거물을 들고 그를 confrontation했을 때, 그의 얼굴에 드리운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아직도 선명하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어." 어린아이처럼 중얼거리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도 어김없이 냉장고를 뒤지는 소리. 이불을 걷어내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 앉아 밤의 간식을 즐기는 남편의 뒷모습이 슬프게 보였다. 노란 조명 아래, 과자를 베어 물 때마다 움찔거리는 어깨. 마치 범죄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많이 먹지 마." 내 목소리에 그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네가... 날 싫어하게 될까 봐."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살찌면... 네가 날 떠날까 봐."
그 순간 가슴 한편이 무너져내렸다. 10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몰랐던 그의 두려움이 갑자기 생생하게 보였다. 병원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고 시작한 다이어트. 내가 건강을 걱정하며 했던 말들이 그에게는 조건부 사랑으로 들렸던 걸까.
식탁에 앉아 그의 감자칩을 하나 집어 먹었다. 짭조름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 "같이 먹자. 대신 내일은 산책 좀 길게 하는 걸로."
남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처음엔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진짜 대화를 나눴다. 그가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음식으로 위안을 찾았던 이야기. 전 여자친구가 그의 체중을 두고 떠나갔던 아픔. 그리고 나마저 잃을까 봐 두려웠던 진심.
다음 날, 나는 그를 위해 건강한 간식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메모를 남겼다. "숨기지 마. 우리 함께 극복해요."
한 달이 지난 지금, 남편의 서랍에는 더 이상 숨겨진 과자가 없다. 대신 우리 부엌 한쪽에는 '정직한 간식 코너'가 생겼다. 그곳에는 규칙이 하나뿐이다 - 죄책감 없이, 그러나 적당히.
때로는 사랑의 언어가 거창한 말이나 화려한 선물이 아닌, 밤중에 함께 나누는 간식 한 봉지에 담겨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