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남편사진

남편의 사진첩 - 추억을 거슬러

그날 아침, 30년 된 남편의 사진첩이 바닷물에 젖었다. 비가 새는 다락방에서 발견한 오래된 가죽 커버의 앨범이었다. 표지에는 희미하게 '우리의 시간들'이라는 글씨가 남아있었다.

앨범을 열자 낯선 여자와 함께 찍힌 남편의 사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내가 아니었다. 사진 속 남편은 스물여덟 살 무렵이었고, 검은 머리카락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넘쳐났다. 그들은 해변가에 서 있었고, 파도가 그들의 발목을 적시는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했다. 바다의 짠 내음이 사진에서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다음 페이지, 또 다음 페이지. 모두 같은 여자였다. 카페에서, 놀이공원에서, 작은 아파트의 침대에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사진을 통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만지자 오래된 종이의 거친 질감이 내 손끝을 자극했다. 남편이 내게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토록 순수한 행복.

"뭘 보고 있어?" 남편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가 다가와 내 어깨 너머로 사진첩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 누구야?" 내 질문은 공기 중에 무겁게 떠올랐다.

남편의 눈이 사진에 고정되었다. 그의 호흡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지민이... 내 첫사랑이야."

"왜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어?"

"말하기 어려웠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날 사고로 죽었어."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편의 손이 사진 위를 맴돌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작은 봉투가 있었고, 그 안에는 바래진 편지 한 장.

편지는 '사랑하는 지민에게'로 시작했다. 남편이 쓴 프러포즈 편지였다. 마지막 줄에는 '내일 네게 이 편지를 주고, 평생 함께하자고 할게'라고 쓰여 있었다.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30년간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미안해... 너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 알았다. 남편이 왜 매년 4월 15일에 혼자 바다에 가는지. 왜 어떤 사진에도 그토록 행복해 보이지 않는지. 내가 30년간 사랑한 남편은 반쪽짜리 심장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앨범을 조심스레 닫으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편의 눈에서 새로운 빛을 발견했다. 해방된 영혼의 빛. 사진첩이 바닷물에 젖은 그날, 우리는 드디어 진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