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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내

남편과 아내: 거울 속 낯선 얼굴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남편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건 결혼 17년 차 어느 평범한 아침이었다. 문득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타인이었을 뿐.

"여보,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그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목소리는 분명 내 남편의 것인데, 얼굴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흐릿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커피잔을 다시 채웠다.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소리만이 주방을 채웠다.

"요즘 당신이 이상해." 그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이상한 건 나가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기였다. 17년간 숨겨온 비밀들로 무거워진 공기.

그날 저녁,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 손에는 와인 한 병과 장미 한 다발. "결혼기념일 축하해." 그의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3개월 전에 지났다. 아니, 정확히는 지났어야 했다.

식탁에 앉아 남편은 자신의 휴대폰 갤러리를 열었다. "저번 주에 찍은 사진 좀 보자." 화면 속에는 낯선 해변에서 웃고 있는 남편과 내가 아닌 여자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을 넘기자 더 많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모두 남편과 그 여자의 모습이었다.

"당신..." 내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랑 닮았지? 그래서 처음 봤을 때 놀랐어."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어. 그저 자신의 남편이라고만 생각했지."

혼란스러운 나를 바라보며 남편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알츠하이머 진단 받은 지 이제 2년이야. 나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점점 늘고 있어."

식탁 위에는 내가 매일 복용하던 약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남편이 가리킨 냉장고 문에는 달력과 메모들로 가득했다. '나는 김미영입니다. 이 집은 내 집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내 남편 이준호입니다.'

거울을 바라보니 낯선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아내였고, 또 아내가 아니었다.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내 자신의 기억이었다.

"사랑해, 미영아."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 새겨진 주름은 우리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온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나는 또다시 낯선 남편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나는 온전히 그의 아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