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컬트 취미
종이 한 장이 북풍에 휘날리듯 민준의 세계는 그날 밤 뒤집혔다. 사랑하는 남편 현우가 지하실에서 발견한 그림자는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여보, 이건 그냥 내 취미야. 걱정할 거 없어." 현우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떨림이 있었다. 손전등 불빛 아래 드러난 지하실 벽면의 기호들과 말라붙은 붉은 액체. 민준은 그 순간 자신이 15년간 함께 잠들었던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오한이 들었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검은 가죽 표지의 책 속에는 현우의 필체로 빼곡히 적힌 의식과 주문들. 페이지 귀퉁이마다 작은 별표로 표시된 '성공'이라는 단어. 신혼 때부터 민준의 행운이라 생각했던 승진, 복권 당첨, 심지어 불임 끝에 얻은 아이까지—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당신은 내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몰라." 현우가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촛불에 비친 검은 호수처럼 깊고 어두웠다.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어."
밤마다 들리던 지하실의 웅얼거림, 가끔씩 맡았던 이상한 향, 현우의 갑작스러운 출장들—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민준은 15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남편이 집 안에 만들어놓은 보이지 않는 결계를, 그들 가족을 지킨다며 만든 오컬트의 세계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건 다 우리를 위한 거야." 현우의 손에는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장갑으로 가려왔던 것들. "내가 멈추면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해."
민준은 남편의 눈에서 공포와 결의를 동시에 보았다. 그리고 서랍에서 꺼낸 가족사진 뒤에 숨겨진 메모. '대가 지불 기한: 다음 보름달'
그 순간 민준은 깨달았다. 현우의 오컬트 의식은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래였다. 누군가—아니, 무언가와의 거래. 그리고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밤, 민준은 결정을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실로 내려가 남편의 책들을 펼쳐봤다. 마지막 페이지에 민준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종 제물'이라는 메모와 함께.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다른 의식, 거래를 파기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제물을 바치는 자의 희생.
민준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의 베개 밑에 편지 한 장을 남겼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면, 이번엔 내가 당신을 위해 희생할 차례야."
보름달이 뜬 날 밤, 남편이 오래된 나무 아래 파놓은 구덩이 앞에 민준이 서 있었다. 손에는 남편의 책에서 찢어낸 한 페이지와 자신의 피로 쓴 새로운 계약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