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남편출근

남편의 출근: 날마다 죽어가는 시간

그날도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15년째 반복되는 습관. 내 몸은 이미 시계가 되어버렸다. 옆에서는 아내가 가벼운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소리 없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니 세상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검은 액체가 포트에 떨어지는 소리만이 고요한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매일 마시는 커피인데도 오늘따라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첫 모금을 삼키자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내 손이 문득 멈췄다.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아내와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내 얼굴만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때도 보고서 마감 생각에 정신이 절반쯤 회사에 가 있었으니까.

"여보, 벌써 일어났어?"

아내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아내는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일찍 출근해야 해?"

"응. 프로젝트 마감이 이번 주야."

아내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할 말은 언제나 똑같다는 것을. 매일 아침 같은 대답, 같은 표정, 같은 루틴.

넥타이를 매며 욕실 거울을 봤다. 눈 밑의 다크서클, 늘어난 주름, 희끗해진 머리카락. 대학 동창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너 많이 늙었다"고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정장을 입은 채 거울 속 낯선 사람과 마주했다.

현관문을 열려는데 아내가 도시락을 내밀었다.

"오늘은 좀 일찍 들어와요. 민준이 발표회 있잖아."

아차, 아들 발표회. 완전히 잊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신나게 얘기했는데.

"알았어.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갈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지난번엔 딸 생일파티에 늦었고, 그 전엔 결혼기념일 저녁 식사를 취소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차에 오르기 전,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있었다. 회색빛 아파트 단지 너머로 붉은 기운이 번져가고 있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하늘을 제대로 본 걸까.

차 키를 손에 쥐고 서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회사에 연락했다. "오늘은 재택근무하겠습니다." 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오늘... 아침은 같이 먹을까?"

아내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 속에서 오래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 보였다. 아파트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테이블 위에 부서졌다. 15년 만의 첫 지각이었지만, 어쩌면 이제야 진짜 인생에 제시간에 도착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