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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판타지

남편의 판타지: 현실과 환상 사이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 지 정확히 삼백육십오일 째, 그가 남긴 일기장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다. 그가 떠난 후 처음으로 용기를 내 노트북을 켰을 때, 바탕화면에는 '당신만 볼 수 있는 진실'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누구인지 이제야 말할 수 있어."

첫 페이지의 문장이 내 심장을 멎게 했다. 스무 해 함께 살아온 남자,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만 알았던 그의 진짜 정체. 일기장은 계속되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다. 이 세상에 숨어 살고 있는 '판타지 세계의 망명자'라고.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생활비를 타서 도박으로 날린 뒤 도망친 변명으로는 너무 창의적이었다. 하지만 일기장 중간에 끼워진 사진들. 내 남편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긴 사진들. 그리고 우리 결혼식 날 찍은 사진 속, 그의 눈동자에 비친 무지개색 반사광.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유배된 왕자였어. 내가 타고난 힘이 완전히 소멸되기까지는 정확히 20년이 걸려. 그 시간이 지나면 나는 원래 세계로 강제 소환돼.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넌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어."

그의 일기는 우리의 만남, 첫 키스, 결혼, 아이들의 탄생까지... 모든 순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뒤에는 그가 감추고 있던 진실이 있었다. 밤마다 몰래 지하실에서 주문을 외웠던 이유, 매년 동지에 혼자 산에 오르던 이유, 그리고 가끔 아이들이 아플 때면 이상하게도 금방 나아지던 이유.

마지막 페이지에는 좌표가 적혀 있었다. 우리 집에서 3시간 거리의 깊은 산속. "내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 거기 있어. 찾아오지 마. 그러나 너무 보고 싶다면..."

아이들을 이웃에게 맡기고 산으로 향했다. 그가 적어준 좌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완벽한 원형으로 자란 일곱 그루의 나무. 그 중앙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물은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연못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물 속에서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찾아왔구나," 그가 미소 지었다.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물에 손을 담그려는 순간, 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도 아빠 보러 왔어요!" 돌아보니 아이들의 눈동자에도 무지개색 빛이 어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가족의 판타지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