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고민: 세상의 사이에서
나는 열일곱 번째 생일에 뉴진스의 댄스를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방 거울 앞에서 'Hype Boy'의 안무를 마치고 숨을 고르는데, 엄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수야,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대." 그 순간, 내 세계의 균열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시골에 사셨다. 서울의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K-팝 멜로디와는 거리가 먼 곳. 버스에서 내리자 귀를 때리는 것은 도시의 소음 대신 청명한 고요함이었다. 손에는 뉴진스의 최신 앨범과 함께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찹쌀떡이 들려 있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가 왔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약해져 있었지만, 그 따스함은 여전했다. 주름진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물으셨다. "요즘은 뭐가 그리 재미있니?"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안경을 쓰시고 화면을 들여다보셨다. "아이구, 네 나이 때 난 벌써 논일을 했는데..." 그리곤 잠시 멈추셨다가 말씀하셨다. "근데 춤은 참 예쁘구나."
밤이 깊어갈수록 할머니의 호흡은 거칠어졌다. 내가 핸드폰을 보며 팬카페에 글을 쓰려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셨다. "지수야, 할머니 노래 좀 들려줄래?" 당신이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라고 하셨다. 나는 당황했다. 뉴진스의 노래는 외웠지만, 할머니의 노래는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모르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의 눈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때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기 시작하셨다. "산도 좋고 물도 좋은 우리 고향..." 나는 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자장가처럼 불러주셨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후렴구에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다음 날, 할머니의 숨이 더 얕아졌다. 의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고민했다. 뉴진스의 콘서트 티켓팅이 바로 내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서울로 돌아간다면,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놓칠지도 모른다.
그날 밤, 할머니 곁에서 잠들기 전 핸드폰을 보니 팬카페에서는 콘서트 준비로 들썩였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 티켓팅 알람을 껐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 눈을 감은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할머니는 일주일 후 새벽에 떠나셨다. 그날 아침, 나는 할머니의 낡은 라디오에서 우연히 뉴진스의 'Attention'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 선물을 주신 것 같았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는 이제 두 개의 다른 멜로디—뉴진스의 경쾌한 리듬과 할머니의 구성진 민요—가 공존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