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아내: 제로 칼로리 사랑의 무게
"아내가 사라졌다." 그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길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평소 같으면 들렸어야 할 주방에서의 소리도 없었다. 길동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갔다. 그곳에 아내가 있었다. 아니, 아내의 절반이 있었다.
"여보, 다이어트 시작한 지 딱 한 달 됐어."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맙소사, 그녀는 반투명해져 있었다. 빛이 그녀의 몸을 통과해 벽에 그림자 같은 흔적만 남겼다. 길동은 눈을 깜빡였다. 환각일까 싶어 눈을 비볐지만, 현실이었다. 아내의 목소리는 또렷했으나 그 모습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무슨 다이어트를 한 거야?" 길동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내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다이어트 일지를 가리켰다. 불규칙한 필체로 빼곡히 적힌 노트에는 '10kg 감량', '탄수화물 제로', '간헐적 단식'과 같은 문구들이 강조되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굵은 글씨로 '존재감 다이어트'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 내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내의 말이 방 안에 울렸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더 작아지라고 했어. 더 조용히, 더 얌전하게, 더 가볍게. 그래서 시작했어. 존재감 다이어트."
길동은 아내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손이 그녀를 통과했다. 차가운 물속에 손을 담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당장 그만둬!" 길동이 소리쳤다.
"벌써 늦었어." 아내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가벼워졌다. "어제는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았어. 내일은 내 목소리가 사라질 거야. 이게 내가 원한 거였을까?"
그날 저녁, 길동은 아내의 다이어트 노트를 읽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워왔는지 깨달았다. 매일 한 끼씩 거르기, 말할 때마다 사과하기, 공간을 적게 차지하기, 의견 줄이기. 그가 눈치채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녀를 이렇게 투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길동은 아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옷장, 화장대, 책상—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아내는 완전히 사라졌다. 부엌 테이블 위에는 마지막 메모가 있었다. "목표 달성. 0kg." 그리고 아침 햇살이 그 메모를 비추며 잠시 무지개 빛깔로 반짝였다.
길동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내를 찾았다. 간혹 창문에 맺힌 이슬이 그녀의 실루엣처럼 보일 때가 있었고, 가끔은 바람이 그녀의 목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그는 아내의 다이어트 노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존재감 회복하기'. 어쩌면 그녀는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충분히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