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재밌는 역습
아침마다 체중계 위에 오르는 일은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았다. 오늘도 역시, 숫자는 어제보다 200그램 늘어있었다. 김지현은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3개월째 이어지는 다이어트, 그런데 몸무게는 마치 요요처럼 오르락내리락 춤을 추고 있었다.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고 우울해할 필요 없어. 그냥 재밌게 생각해봐." 친구 민영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재밌게? 다이어트와 재미를 한 문장에 넣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지현은 코웃음을 쳤다.
그날 저녁, 회사 워크숍 뒤풀이에서 맥주잔을 들고 있던 지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다이어트를 게임처럼 만들면 어떨까?' 그녀는 술기운에 흥분해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다이어트 RPG: 살 1kg 감량할 때마다 캐릭터 레벨업. 치팅데이는 특별 아이템 사용권. 운동은 퀘스트 완료.'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지현은 자신의 메모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짓이지만 해볼 만했다. 그녀는 노트를 꺼내 화려한 색연필로 자신의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76kg의 지현은 '레벨 0 신입 모험가'였다.
일주일이 지났다. 체중계에 올라 75.5kg를 확인한 지현은 환호성을 질렀다. "반 레벨 업!" 그녀는 노트에 자신의 캐릭터에 작은 검을 추가했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다이어트 게임'을 설명했을 때, 처음엔 다들 미친 사람 보듯 했지만, 곧 회사 내 작은 열풍이 되었다. 마케팅팀의 성준은 자신을 '레벨 2 마법사'로, 디자인팀의 하은은 '레벨 1 궁수'로 등록했다.
한 달 후, 사무실에는 '다이어트 길드'가 형성되었다. 점심시간마다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며 '던전 공략'을 하고, 주말엔 등산으로 '보스 레이드'를 진행했다. 삼겹살 모임은 '치팅데이 파티'로 재명명되었고, 누구든 과식하면 '마나 고갈' 상태에 빠졌다.
3개월 후, 지현은 72kg을 기록하며 '레벨 4 전사'가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다이어트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아침이 기다려졌다. 체중계 위에 서는 순간은 게임의 로딩 화면 같았고, 숫자는 그저 다음 모험을 위한 지표일 뿐이었다.
어느 날 민영이 물었다. "요즘 살 많이 빠졌네. 비결이 뭐야?"
지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비결? 그냥 다이어트를 다이어트처럼 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이제 알았다. 인생의 모든 고난은 결국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다이어트도, 일도,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체중계 앞에 선 지현은 노트를 펼쳐 오늘의 퀘스트를 확인했다. 숫자는 더 이상 그녀를 정의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