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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직장

드라마 같은 직장: 마지막 대본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처럼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회의실 냉방기 소리 속에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내 앞에는 내가 몇 달 동안 밤새워 작성한 드라마 대본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건너편에는 국내 최고 방송사 PD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김작가, 이번 대본은 정말..." 최 PD가 말을 흐렸다. 그의 눈빛에서 이미 답을 읽을 수 있었다. 벌써 세 번째 탈락이었다.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내 발걸음은 무겁기보다는 오히려 가벼웠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가벼움이었다.

직장 건물을 나서며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묘하게 따가웠다. 가방에 든 대본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김작가님? 윤 대표입니다. 지금 저희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말단 작가인 내가 갑자기 제작사 대표에게 호출을 받다니. 버스에서 내려 제작사로 향하는 길, 커피숍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절망적인 드라마의 주인공 같았다. 심장은 타이핑할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윤 대표의 사무실은 의외로 소박했다. 책장엔 오래된 드라마 대본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벽에는 수상 경력을 증명하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앉으세요." 윤 대표가 의자를 가리켰다. "김작가님의 대본 읽었습니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또 다른 거절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통과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역시 그랬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윤 대표가 계속했다. "어젯밤 다시 읽어봤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아침까지 생각했습니다. 김작가님, 당신의 이야기는...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더군요."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실패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다음 시즌 메인 작가로 김작가님을 쓰겠습니다."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내 귀를 의심했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윤 대표는 웃으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계약서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신의 대본은 완전히 새로 써야 합니다. 더 과감하게, 더 솔직하게요. 당신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로요."

사무실을 나서는 길, 모든 것이 다른 색채로 보였다. 가방 속 탈락한 대본이 더 이상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시작의 증거였다. 길가의 간판들, 행인들의 대화, 도로의 소음까지도 새로운 대본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컴퓨터 앞에 앉아 새 문서를 열었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타이핑을 시작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처럼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회의실 냉방기 소리 속에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때로는 인생 최악의 순간에 최고의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