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병원직장

병원 직장: 흰 가운 아래의 진실

멀쩡하던 환자가 죽은 건 내 실수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믿는 진실은 그랬다. 병원 지하 탈의실에서 흰 가운을 벗으며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차장님, 오늘 회식 참석하시죠?" 간호사 김지영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렸다. 그녀의 눈빛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 성민병원에서 회식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오늘은 좀..." 내 말끝을 흐리자 김 간호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원장님께서 특별히 차장님 참석을 원하세요.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대요."

탈의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였다. 마치 내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성민병원 행정차장으로 7년, 나는 이곳의 모든 불문율을 알고 있었다. 원장의 '특별한 요청'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저녁 회식장, 소주 잔이 오가는 테이블 너머로 원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우리 최 차장, 자네 덕분에 병원이 많이 살았어. 특히 보험 청구 관련해서는..."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테이블 위 소주병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수술실의 메스처럼 번뜩였다.

"감사합니다만, 제가 한 일은..." 내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원장의 손이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겸손할 필요 없어. 자네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보험 코드를 적용하는지 우리 모두 알아."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앞으로도 그 재능 발휘해주길 바라네."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을 세수하며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의료 행정가로서의 꿈을 품고 입사했던 초년생이 이제는 병원 수익을 위해 보험 청구 코드를 '창의적으로' 조작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죽은 환자... 정확한 진단 코드가 아닌 더 높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코드로 바꿔치기한 것이 과연 그의 죽음과 무관할까.

회식 자리로 돌아가는 길, 병원 로비에 걸린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러니했다. 이 병원의 진짜 중심은 환자가 아닌 수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수익 창출의 숨은 주역이었다.

테이블로 돌아가며 결심했다. 내일, 모든 진실을 들고 검찰청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원장의 건배사가 시작되었다. "우리 병원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의 눈빛이 내게 고정되었다. "그리고 최 차장의 행정부원장 승진을 축하하며!"

찬사와 박수 소리 속에서 소주잔을 들었다. 입술에 닿은 술은 평소보다 쓰게 느껴졌다. 마치 양심의 가격표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병원과 직장,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흰 가운처럼 순결해 보이는 거짓말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