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스트레스의 비밀정원
오전 8시 52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민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표정들이 중력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42층으로 향하는 동안, 그녀는 다시 가면을 쓸 준비를 했다.
"팀장님, 주말에도 보고서 완성했습니다." 민지는 새로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으로 태블릿을 넘기며 말했다. 빨간색 매니큐어, 빨간색 숫자들. 둘 다 손끝에서 번져가고 있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그녀의 주말 희생을 인정했다. 에어컨 바람이 차게 목덜미를 스쳤다. 민지는 사무실 구석의 자리로 돌아가 무의식적으로 목을 감싸쥐었다.
점심시간, 민지는 회사 건물 뒤편의 작은 공터로 향했다.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이 공간은 3개월 전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무릎을 꿇고 흙을 만지작거렸다. 두 달 전 몰래 심어놓은 씨앗들이 작은 새싹으로 돋아나 있었다. 민들레, 제비꽃,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
"여기서 뭐하세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민지는 화들짝 놀랐다. 같은 부서 신입사원 준호였다.
민지는 말없이 가리켰다. 작은 정원, 그녀만의 비밀.
"와, 이거 다 선배님이 가꾼 거예요?" 준호의 눈이 커졌다.
"스트레스 관리법이야." 민지가 짧게 대답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5분씩만 와서 돌봐. 그러면 오후에 팀장이 뭐라고 해도 버틸 수 있어."
준호는 옆에 앉아 조심스레 한 송이 제비꽃을 만졌다. "난 게임해요. 화장실 가서 몰래 폰 게임. 근데 이거 훨씬 좋네요."
다음 날, 준호도 작은 씨앗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그 다음 날엔 회계팀 수진이 합류했다. 이주일 후, 비밀정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직원 다섯 명이 돌아가며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다.
"이번 주 업무 스트레스 지수 조사에서 우리 부서가 전사 최저래." 어느 날 점심시간, 준호가 뉴스를 전했다. "팀장님이 이유를 물어보더라고요."
민지는 빙긋 웃었다. 흙 묻은 손가락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팀장은 절대 모를 것이다. 회사 건물 뒤편의 작은 정원이, 매출 그래프보다 더 중요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퇴근길, 민지는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가면을 벗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는 진짜였다. 때론 가장 강력한 반란은 꽃을 심는 것이라는 걸, 직장 스트레스의 가장 아름다운 해독제는 흙 묻은 손가락이라는 걸, 그녀는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