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와 남편: 세상에 없는 그림자
애니는 남편을 그리는 밤이면 항상 창문을 열어두었다. 마치 그의 영혼이 바람결에 실려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의 미소, 그의 눈빛, 그의 모든 것을 캔버스에 담아내려 했지만, 늘 무언가 빠져있었다. 아마도 생명이었을까.
"이번엔 진짜 같아." 애니는 밤새 그린 남편의 초상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창백한 달빛 아래, 남편의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났다. 애니는 손가락으로 그림 속 남편의 입술을 쓸었다. 차가운 캔버스의 감촉이 그녀의 가슴을 조여왔다.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낸 지 정확히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림 속 남편은 여전히 서른여덟이었지만, 애니는 그 사이 1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가난한 화가였던 그녀가 이제는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아이러니했다. '고인이 된 남편을 그리는 화가'라는 타이틀이 그녀의 작품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오늘은 네가 돌아올 것만 같아." 그녀는 그림을 응시하며 속삭였다. 갑자기 창문으로 세찬 바람이 들이쳤고, 캔버스가 흔들렸다. 그 순간, 애니는 그림 속 남편의 눈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잠깐의 환각이라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은 지울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애니는 발작적으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부엌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생전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붓질이 빨라졌고, 남편의 모습은 점점 또렷해졌다. 완성된 그림을 부엌 벽에 걸었을 때, 애니는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남편이 즐겨 만들던 파스타 소스 냄새였다.
일주일 안에 애니는 집 곳곳에 남편의 그림을 채웠다. 서재에 책을 읽는 남편, 정원에서 일하는 남편, 소파에서 잠든 남편...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장의 책들이 자리를 바꾸고, 정원의 꽃들이 갑자기 피어나고, 소파에는 누군가 누웠던 자국이 생겼다.
"미쳐가고 있는 걸까?" 애니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침대 옆에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그렸다. 그날 밤, 애니는 등 뒤로 온기를 느꼈다. 누군가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쳤다.
"돌아왔어." 남편의 목소리였다. 애니는 몸을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그린 세계에만 존재할 수 있어."
전시회 당일, 갤러리 주인은 애니의 집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자 문을 열었고, 빈 집에서 그림들만 발견했다. 애니의 마지막 자화상은 남편과 함께 해변을 걷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들의 발자국은 모래 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갤러리 주인이 자화상을 만졌을 때, 그림 속 애니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애니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