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남편: 기억의 재생버튼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남편은 다시 살아났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자 나는 잠시 그가 정말 돌아온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삼 년 전 찍은 영상이었다. 제주도 여행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영상.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여보, 좀 더 가까이 와봐. 같이 찍자."
화면 속 내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고,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영상에 담긴 우리의 행복한 표정이 얼마나 덧없이 사라질지. 정지 버튼을 누르면 그가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의사는 말했다. "치매입니다. 초기 단계지만 진행 속도가 빠를 수 있어요." 마흔다섯, 그 나이에 찾아온 알츠하이머. 남편은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때로는 나를 자신의 누나라고 불렀고,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경계했다. 그래서 나는 영상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기억이 담긴 영상들. 결혼식, 신혼여행, 집들이 파티, 그리고 마지막 여행.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영상을 보며 그는 가끔 웃었고, 내 이름을 기억해냈다. "민지야, 그때 참 행복했지?"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다시 우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점점 영상 속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사람 누구예요? 제 친구인가요?"
오늘 아침,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던 그에게 다시 한번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영상이 끝날 무렵,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이 사람이 나인가요?" 그가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당신이에요."
"그리고 이 예쁜 여자는 당신이고요?"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그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행복했나요?"
그 질문에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네, 너무 행복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영상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과의 일상을. 언젠가 나도 잊게 될지 모를 이 순간들을.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그의 혼란스러운 눈빛, 가끔씩 스치는 익숙함의 표정, 그리고 간혹 번쩍이는 인식의 순간들. 영상은 계속 기록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서서히 지워지는 과정을, 그러나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