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편: 맛의 배신
조리용 칼이 내 손목을 스쳤을 때, 나는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혈관을 비켜간 칼날이 남긴 얕은 상처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주방에 흐르는 마늘 향과 양파 내음 사이로 철분 냄새가 섞였다.
"미안해, 내 실수야. 칼을 건네줄 때 손이 미끄러졌어." 남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따뜻했지만, 그의 눈에서는 온기를 찾을 수 없었다. 16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처음 본 표정이었다.
모든 것은 3개월 전, 남편이 갑자기 요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출장이 잦아 주말에만 집에 있던 그가 갑자기 요리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매주 새로운 요리책을 사들였다. 처음엔 귀여운 취미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위한 깜짝 저녁 식사라니, 로맨틱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그의 요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식재료를 다듬는 그의 손길에는 위험한 정확성이 있었고, 수상쩍게 자주 사온 식물성 독소에 관한 책이 서재에 꽂혀 있었다. 어젯밤, 내 컴퓨터로 검색한 기록을 발견했다. '자연 독소, 사망 원인 불명, 부검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
"오늘은 특별한 일식을 준비했어. 푸구라고 들어봤어? 일본에서 면허를 가진 요리사만 다룰 수 있는 복어야." 그가 하얀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내가 직접 손질한 거야."
담백한 생선살 위에 얹힌 고명이 예술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평소였다면 감탄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 완벽함이 오히려 공포스러웠다.
"당신도 먹어." 내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 잠시 당혹감이 스쳤다. "난 이미 맛봤어. 당신만 먹어."
테이블 위, 내 손 닿는 곳에 놓인 핸드폰에는 이미 보험회사 문자가 와 있었다. '생명보험 가입 완료. 수익자: 김민석(남편)'. 지난달 그가 권유해서 가입한 고액 보험이었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16년의 결혼 생활, 그리고 그가 몰랐던 내 직업 - 이름을 바꾸고 은퇴한 독성학 연구원. 남편이 칼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가방에서 작은 증거 수집 키트를 꺼냈다.
"당신이 요리를 시작한 날부터, 나도 매일 당신 음식의 샘플을 모아두었어." 내가 말했다. "흥미롭게도, 천천히 증가하는 비소 함량이 발견됐더군."
주방의 시계만이 소리를 냈다. 식어가는 복어회 위로 마지막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 결혼 생활처럼,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정물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