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남편: 그가 달리는 이유
새벽 네 시 반, 이불을 조용히 걷어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있었고, 남편은 어둠 속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다섯 번째 새벽이었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이 풍경이.
"또 가?" 목소리가 잠겨 나왔다.
"미안, 깨웠구나. 그냥 자." 남편의 속삭임이 방 안에 퍼졌다.
평생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남편이 갑자기 마라톤을 시작한 건 정확히 한 달 전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건강 관리라고 생각했다. 사십대 중반, 슬슬 불거지는 배와 높아지는 혈압 수치가 그를 달리게 만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달리기는 집착에 가까워졌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 아래 달리기 시작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거리를 향해 사라지는 그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남편의 휴대폰을 들었다. 비밀번호는 우리 결혼기념일, 언제나 그랬다. 화면이 밝아지자 러닝 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록들을 둘러보는데, 매일 같은 코스였다. 우리 집에서 출발해 약 4킬로미터를 달려 어딘가에 도착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패턴이었다. 그 '어딘가'는 지도상으로 작은 카페로 표시되어 있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카페라니. 의아함을 느끼며 나는 남편의 카카오톡을 열었다. 받은 메시지함은 비어있었다. 너무 깨끗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지운 것처럼.
다음 날 새벽, 남편이 나가자마자 나도 운동복을 입고 그를 뒤따랐다. 멀리서 그의 실루엣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따라갔다. 진짜로 그 카페에 들어갔다. 20분 후, 남편이 나왔다. 혼자였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남편을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자 따뜻한 커피 향기가 훅 끼쳐왔다. 카운터에 서 있는 노인은 예순은 넘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그의 미소는 따뜻했다.
"저... 방금 전 남자분이 오셨던데요."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아, 4시 50분 단골손님 말씀이신가요? 매일 오시는 분이죠."
"제 남편인데... 무슨 일로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카운터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검은색 수첩이었다. "이걸 매일 쓰고 가세요. 처음엔 그냥 러닝 일지인 줄 알았는데..."
수첩을 펼쳤다. '오늘도 당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라는 제목 아래, 매일의 기록과 함께 내게 쓴 편지들이 빼곡했다. 우리의 처음 만남, 결혼 생활의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최근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고민들.
마지막 페이지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적힌 글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일은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지난 100일간의 편지가 담긴 이 일기장을 선물하려 한다. 당신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 카페에서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정리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당신을 향해 다시 한 걸음씩 달려가고 싶다.'
나는 글씨가 흐려질까 수첩을 얼른 덮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새벽 안개 속에서 달려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 사이로, 내가 처음 반했던 그 미소가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