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같은 직장: 마라톤의 시작점
매일 아침 8시 59분, 나는 회전문을 통과하며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 정렬된 책상들은 마치 경기장의 레인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시작된다, 이 무한한 마라톤이.
"김대리, 지난주 보고서 다시 검토해서 오늘 오후까지 수정본 올려." 과장님의 목소리가 출발 신호탄처럼 귓가를 울린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니터 화면은 이미 땀으로 흐릿하게 보인다.
점심시간, 직원 식당에서 포크를 움직이는 손목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어제 밤 늦게까지 끝마친 작업의 흔적이다. 오전의 스프린트를 마치고, 오후의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하는 중이다. 옆자리의 박 사원이 속삭인다. "오늘 저녁에도 남으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동료 러너를 향한 동정이 묻어있다.
오후 3시, 회의실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장이 된다. 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허들처럼 내 앞에 놓인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각 질문을 넘을 때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김대리가 리드하게." 부장님의 선언에 회의실이 잠시 정적에 빠진다. 내 심장만이 달리기를 계속한다.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마라톤에서 완벽한 준비란 없다. 그저 달릴 뿐이다.
퇴근 시간을 두 시간 넘긴 저녁, 사무실은 이제 텅 빈 운동장 같다. 모니터 불빛만이 나를 비춘다. 운동화 끈을 매듯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나는 혼자 뛰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날 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24시간 피트니스 센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직장에서의 하루가 마라톤이라면, 진짜 마라톤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다음 날 아침, 알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운동화를 신었다. 동네 한 바퀴를 달리는 데는 20분이 걸렸다. 숨은 거칠게 토해졌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벼웠다.
오늘도 8시 59분, 회전문을 통과한다. 형광등 불빛은 여전하지만, 내 시선은 다르다. 책상들 사이로 내 레인이 보인다. 이제 나는 안다. 직장은 끝없는 마라톤이지만, 진짜 운동은 내가 스스로 정한 페이스로 달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오늘도 마라톤은 계속된다. 다만 이제는 내가 결승선을 그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