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하는 남편: 완벽의 그림자
그가 세 번째 자기계발서를 던져버린 건 새벽 세 시였다. 창밖으로 던지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확히 72일째, 우리 아파트 서재는 목표 달성 차트와 포스트잇으로 도배된 미친 열정의 전시장이 되어 있었다.
"여보, 그만하고 좀 쉬어." 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작게 떨렸다.
민수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들고 형광펜을 꺼내 다시 줄을 긋기 시작했다. 형광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마치 우리 결혼생활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그의 인생은 이제 색깔별로 분류된 정보와 목표들의 집합이었다.
처음엔 그저 승진을 위한 준비였다. 그러나 회사에서 승진이 좌절되자, 자기계발은 그의 종교가 되었다. 아침 5시 기상, 명상 30분, 독서 1시간, 영어 공부 40분, 운동 1시간. 식사 시간조차 '효율적 영양 섭취 시간'으로 표현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우리의 사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문이 들었다.
"민수야, 우리가 마지막으로 영화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 내가 물었다.
"시간 낭비." 그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영화 두 시간이면 '초고속 성공을 위한 마인드셋' 챕터 3개를 끝낼 수 있어."
그날 밤, 나는 남편의 다이어리를 훔쳐보았다. 빽빽한 일정표 사이에서 내 생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옆에 쓰여 있는 메모: '아내 생일. 감정적 유대감 강화를 위한 소통 시간 확보 (30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리의 관계가 그의 자기계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순간이었다.
다음 날, 그가 출근한 뒤 나는 그의 자기계발 차트를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우리의 웨딩 앨범을 서재 한가운데 놓았다. 저녁이 되어 현관문이 열릴 때,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당신이 잊어버린 것." 내가 대답했다.
앨범을 펼친 그의 얼굴에 오랜만에 감정이 스쳤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해변가를 뛰어다니던 우리의 모습. 웃음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얼굴들.
"나도... 발전하고 싶었어."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싶었어."
"나는 이미 자랑스러워." 내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당신이 필요해. 자기계발서가 아닌, 당신이."
그날 밤, 민수는 모든 자기계발서를 박스에 담았다. 하나만 남기고. 우리는 그 마지막 한 권을 함께 읽기로 했다. 제목은 '행복의 기술: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민수의 서재 책상 위에는 새로운 차트가 붙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갈 추억들의 목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