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남편 사이: 유리 천장과 플라스틱 하트
남편의 비밀번호는 내 생일인데, 그가 지은 비밀번호임에도 생일을 축하받은 기억은 없다. 회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 7시, 하늘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희뿌옇고, 사무실 빌딩은 차가운 유리와 철로 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 오늘 저녁에는 집에 일찍 들어올 수 있어?" 그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듯 낮고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 아래 숨겨진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도 그는 퇴근 후 술자리가 있다는 것. 내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 정확히 3년 전, 결혼 전에는 그런 요청이 로맨틱하게 들렸는데.
"미안해, 오늘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늦을 것 같아." 말을 내뱉는 순간, 남편의 한숨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나도 한숨을 내쉰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내 뒤에서 누군가가 문을 잡아준다. 돌아보니 김 상무. 그의 눈빛이 내 얼굴을 스캔하듯 훑는다.
"이번 프로젝트, 정말 중요한데 괜찮겠어?" 그의 질문에는 항상 두 개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표면적인 질문, 다른 하나는 '여자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 내 능력을 의심하는 상무와 내 헌신을 의심하는 남편 사이에서, 나는 매일 아침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물론이죠. 이미 모든 준비는 마쳤습니다." 자신감 있게 대답하지만, 내 뱃속에서는 불안감이 소용돌이친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 메일함에는 이미 50개의 읽지 않은 메일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남편이 보낸 것. '오늘 저녁 계획'이라는 제목.
그날 저녁,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다. 김 상무의 표정이 말해주었다. 놀라움, 인정,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 사무실을 나서는데 핸드폰 메시지가 울린다. '축하해. 집에 깜짝 선물이 있어.' 남편이다.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온다.
집에 도착하니 테이블 위에는 촛불과 와인, 그리고 케이크가 놓여있다. "축하해, 프로젝트 성공." 그가 말한다. 그의 눈에서 진심이 보인다. 내가 말을 잃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네 비서에게 물어봤어. 네가 3개월 동안 밤새며 준비했다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몰랐어."
그 순간 깨달았다. 직장에서의 유리 천장은 내 능력으로 깨트릴 수 있지만, 집에서의 벽은 오해와 대화 부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남편은 내 성공에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부재를 외로워했던 것이다.
"미안해," 우리는 동시에 말한다. 그리고 웃는다.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김 상무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나는 '나중에 통화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내고 전원을 끈다. 오늘 밤은 남편의 시간. 내일은... 내일의 내가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