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에스파: 일상을 뒤바꾼 인공감정
마지막 에스파 업데이트가 끝나자 사무실 전체가 한순간 정적에 빠졌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내 얼굴을 비추는 동안, 나는 내 옆자리의 김 대리가 슬며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괜찮아요?" 내가 묻자 그녀는 황급히 모니터를 껐다.
"네, 괜찮아요. 그냥... 에스파가 너무 정확해서요."
직장 에스파(Emotional Spectral Analysis)는 6개월 전 우리 회사에 도입된 '직원 감정 최적화 시스템'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모니터 위 작은 센서가 우리의 표정, 목소리, 심지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까지 분석해 그날의 감정 상태를 파악했다. 회사는 이것이 '직원 행복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 이건 생산성을 위한 것이었다.
"오늘 슬픔 지수가 73%네요. 업무 효율이 평소의 38%밖에 안 될 것 같아요. 오후 회의는 김지원 씨가 대신 참석하는 게 어떨까요?" 내 화면에 팝업이 떴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발했다. 감정이 수치화되고, 분석되고, 관리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에스파는 정확했다. 화가 났을 때 보고서를 쓰면 실수가 늘어났고, 슬플 땐 회의에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에스파는 우리의 감정에 맞게 업무를 재배치했고, 전체적인 업무 효율은 실제로 상승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회사 전체 메일이 왔다. '에스파 2.0 업데이트 - 감정 선제 조정 기능 추가'
업데이트 후 처음으로 에스파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 행복감이 32%로 낮습니다. 52%로 상승시킬까요?"
망설임 없이 '예'를 클릭했다. 모니터에서 복잡한 패턴의 빛이 깜빡였고,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졌다.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점심시간, 평소라면 짜증냈을 식당 긴 줄도 괜찮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자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두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감정의 파도가 없는 평온한 바다 같았다. 동료들과 대화할 때도 진짜 웃음과 에스파가 만든 웃음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아침, 김 대리가 에스파를 끄고 울고 있던 이유를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에스파 덕분에 그녀는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슬픔을 느끼지 않고.
지금 내 모니터에 새로운 팝업이 떴다. "정서적 불안정이 감지되었습니다. 감정을 안정화할까요?" 손가락이 '아니오' 버튼 위에서 떨린다. 나는 내 감정이 필요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그것이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옆자리에서는 김 대리가 이미 '예'를 눌렀고, 그녀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멈추는 것이 보인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내 모니터 속 에스파는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