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직장짝사랑

직장 속 짝사랑: 나만의 비밀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의 향기가 내 모든 감각을 깨웠다. 커피, 바닐라, 그리고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녀만의 향. 어젯밤 야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단정한 모습의 유진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 317일째, 아직도 그녀는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번 프로젝트 발표 준비 많이 했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심장이 멈춘 듯했다. 7개월 동안 같은 팀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먼저 말을 건 적은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디지털 숫자는 천천히 올라갔고,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어, 응. 어제 밤늦게까지..." 목소리가 떨렸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딩'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화이팅"이라는 말을 남기고 걸어나갔다. 내 심장은 여전히 정상 박동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 생활 3년 차, 나는 유능하지만 존재감 없는 회계부 직원이었다. 반면 유진은 입사 1년 만에 마케팅팀에서 승진한 라이징 스타였다. 우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느꼈다. 그 벽에 이름을 붙이자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홀로 식사하던 중 우연히 그녀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저 사람 참 성실해. 회계부에서 최근 발굴한 원가절감 방안이 대단하대." 그녀의 말에 내 귀가 쫑긋 세워졌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니.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내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프로젝트 발표는 성공적이었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길, 유진이 내게 다가왔다. "발표 정말 좋았어요. 혹시... 오늘 퇴근 후에 시간 있으세요?"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회사 근처 작은 카페에 앉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유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평범했고, 또 훨씬 특별했다. 그녀도 나처럼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삶 뒤에도 불안과 고독이 있었다.

"실은... 당신이 회계부에 지원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고백에 나는 커피를 살짝 흘렸다. "그때 인사팀에서 인턴으로 일했거든요. 당신 이력서가 인상적이었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 사이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날 밤 깨달았다. 짝사랑은 거리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였다는 것을. 그리고 직장에서의 사랑은 위계가 아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익숙한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이번엔 그녀의 향기가 아닌, 그녀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어제의 대화가 꿈이 아니었음을, 우리의 시작이 실제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317일의 짝사랑이 아닌, 첫날의 설렘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