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호러: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들
복사기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컴퓨터 화면의 푸른빛만이 깜빡이는 밤 11시 37분이었다. "김과장님..."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함께 내 이름은 다시 한번 불려졌다.
야근은 이 회사의 불문율이었다. 첫 날부터 선배들은 내게 말했다. "정시 퇴근은 잊어." 그때는 그저 과장된 농담으로 들렸다. 이제 안다. 그게 경고였다는 것을.
액정 화면 속에서 마감 보고서의 숫자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눈을 비비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피로가 만들어낸 환각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복사기의 소리는 분명했다. 천천히, 무거운 다리를 끌며 복사기 쪽으로 걸어갔다.
"대리님, 그 보고서 어떻게 됐나요?" 뒤에서 들려온 부장의 목소리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부장은 오늘 일찍 퇴근했고, 지금 이 시간 이 사무실에 나 혼자만 있어야 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아무도 없었다. 복사기 위에는 내가 아침에 출력해둔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빨간 펜으로 X표가 그어져 있었다. "재작성 필요" 라는 메모와 함께.
처음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입사 3개월째였다. 야근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세면대 거울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동료의 얼굴. 그가 속삭였다. "여기서 나가야 해." 놀라 뒤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거울을 봤을 때, 거기엔 핏기 없는 내 얼굴만 있었다.
그 동료는 다음 날 회사를 그만뒀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졌다'. 누구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책상으로 돌아와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보고서 속 숫자들이 다시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한 문장으로 재배열되었다. "이곳에선 퇴직이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손이 떨렸다. 그때 회사 메신저에 알림이 떴다. 익명의 발신자. "김과장님, 야근수당 신청하셨나요? 지난 달에도 누락됐던데..."
어떻게 이 회사의 진실을 몰랐을까? 직원들의 공허한 웃음, 무의미한 회의, 끝없는 야근. 모두 표면적인 것이었다. 이 회사의 진짜 사업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가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서서히 갉아먹히는 영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뭔가 차갑고, 굶주린 것. "퇴근하시나요?"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물었다. 내 귀에만 들렸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돌아올 테니까."
로비에 도착했을 때, 경비원의 부스는 비어있었다. 출입 명부에는 내 이름 옆에 이미 퇴근 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어젯밤에. 그리고 그 옆에는 내일의 출근 시간도.
회전문을 밀고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들어 회사 건물을 올려다봤다. 모든 창문은 어둡고 텅 비어 있었다. 단 하나, 내가 있던 자리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가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