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그림자, 회사의 비밀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내 하루는 시작됐다. 삼십 층 높이의 유리와 철골 구조물 사이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나는 청소 도구를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식회사 미래비전'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건물은 늘 미래적인 느낌이었다. 직원이 모두 떠난 사무실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김 씨, 오늘도 수고해요."
경비원 최 씨가 말했다. 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청소부로 일한 지 3년, 이 회사의 모든 직원을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투명인간이었다. 물론,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22층 마케팅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눈을 훑다가 붉은색 표시가 된 보고서 한 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로젝트 피닉스 - 최종 단계'라는 제목이 선명했다.
회사가 3개월 전부터 비밀리에 추진하던 프로젝트였다. 평소처럼 무심코 서류를 정리하려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수합병 후 인력 구조조정 계획 - 1차 감원 대상자 명단"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서류를 들여다봤다. 200명이 넘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일 아침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된다는 메모와 함께.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직장 동료들, 아니 이제는 내 유일한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3년 전, 난 이 회사의 과장이었다. 부당해고 후 재취업이 막히자 청소부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했다.
청소를 마치고 경비실에 들렀다. "최 씨,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 회사 앞 광장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미래비전의 미래는 없다 -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 폭로'. 그리고 명단에 있는 모든 직원에게 익명으로 메시지가 전송됐다.
혼란스러운 아침이었다. 사장과 임원들은 당황했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평소처럼 청소 카트를 밀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인사팀 최 과장이었다.
"이종석 과장님... 맞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3년 만에 누군가 나를 알아봤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진짜 회사를 되찾을 시간입니다."
나는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걸었다. 때로는 직장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맞서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함께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