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간식: 꿈을 먹다
이력서 열 번째 수정 중에 "희망 연봉"란을 다시 비웠다. 상관없다는 말을 믿기엔 세상이 너무 정직했다. 내 옆에는 쌓인 과자 봉지와 컵라면 용기들. 취업 준비 9개월 차, 내 식탁은 이제 편의점 간식 코너의 축소판이 되었다.
"또 컵라면이야?"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손에는 따끈한 김치찌개가 담긴 냄비. 찌개의 김이 방안에 퍼지며 편의점 음식 냄새를 몰아냈다. "밥 먹어야 힘이 나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력서를 보내고, 수십 번의 거절을 맞닥뜨리는 일상. 거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위안은 달콤하고 짭짤한 간식들이었다. 초콜릿은 면접 실패의 쓴맛을 덮었고, 감자칩은 '경력직 우대'라는 벽 앞에서의 무력감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그날 밤, 김치찌개를 비운 뒤에도 허전한 마음에 초콜릿을 하나 집어 들었다. 포장지를 뜯는 순간, 낯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꿈을 먹고 있습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초콜릿을 내려놓고 다른 과자 봉지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도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신의 꿈을 먹고 있습니다."
모든 간식 포장지에 같은 문구가 보였다. 잠시 환각인가 싶었지만, 그 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살이 찐 내 얼굴이 보였다. 9개월 동안 내가 먹어치운 것은 간식만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 자신감, 그리고 꿈도 함께 먹어치우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모든 간식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조깅을 나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달리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취업 그 자체가 아니라 내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었던 거야.'
한 달 후, 나는 취업했다. 대기업도 아니고, 희망 연봉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회사 라운지에 비치된 간식을 볼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이후로 간식은 내게 더 이상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작은 휴식과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야근할 때 손이 가는 사내 카페의 쿠키 한 조각. 그 포장지에 적힌 문구를 본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 있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바뀐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