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대가: 아내라는 이름의 그림자
내 아내는 매일 아침 7시 정각에 사라진다. 비밀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것이 이상할 게 없었다. 9년 차 직장인이니까.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보, 회사에서 전화 왔는데... 당신, 2년 전에 퇴사했다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거실에 흐르는 정적이 귀를 찢을 듯했다.
아내의 얼굴에서 혈색이 싹 가셨다. 그녀의 검은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9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나... 말하고 싶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마른 낙엽 밟히는 소리처럼 바스락거렸다. "취업한 것처럼 꾸민 거야. 처음에는 잠깐만 속이려고 했는데..."
거실 탁자 위 그녀의 출근용 머그컵에서 식어가는 커피 향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아내는 매일 아침 정장을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화장도 완벽하게 했다. 근데 그녀가 향한 곳은 회사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카페에 가서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서류 쓰고, 면접 준비했어. 가끔은 그냥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신 부모님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며느리... 실은 백수였어."
아내의 휴대폰 갤러리에는 2년치 가상 회사생활 증거들이 가득했다. 없는 동료와의 회식 사진을 위해 혼자 술을 마시며 찍은 셀카들. 가상의 회사 로비에서 찍은 듯한 사진들은 전부 다른 빌딩들이었다. 출장이라며 떠났던 여행들은 면접 때문이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 부부의 대화가 늘 피상적이었던 이유를. 아내가 회사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야근이 많다며 집에 늦게 들어왔던 날들이 사실은...
"미안해... 처음엔 '곧 취업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말하기 더 어려워졌어. 당신이 실망할까봐, 떠날까봐 두려웠어."
그녀의 눈물 맺힌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취업이 인생의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내 아내는 매일 아침 가짜 자신을 입고 세상에 나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을 의심 없이 믿었다. 우리 둘 다 같은 거짓말의 피해자였다.
탁자 위에 놓인 아내의 가짜 사원증을 집어들었다.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오늘따라 너무나 슬퍼 보였다. 손을 뻗어 그녀의 젖은 뺨을 닦아주며 물었다. "그럼 오늘... 진짜 당신을 만나게 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