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애니: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빛이 강렬하게 내 눈을 찔렀다. 제21회 국제 애니메이션 컨벤션, 그리고 내 손에는 마지막 남은 이력서가 들려 있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부스들 사이를 걸으며, 내 포트폴리오를 꺼내 보일 때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려온 캐릭터들, 밤새 완성한 스토리보드, 대학 4년 내내 갈고닦은 동작 연구들. 그러나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실력은 좋은데, 우리가 찾는 스타일과는 조금 달라요." 혹은 "경력자를 우선 채용하고 있어요."
취업 준비 9개월째, 내 통장 잔고는 바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제 현실적인 직업을 찾아봐라"라는 문자가 오늘 아침에도 도착했다. 나는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다크서클이 짙어진 눈, 여기저기 스며든 커피 얼룩이 있는 후드티, 그리고 작년 방영된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핀 배지.
마지막 부스, '드림웍스 스튜디오'였다. 해외 대형 스튜디오는 보통 전시만 하고 실제 채용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은 모두 돌았다. 부스 앞에 서자, 검은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포트폴리오 보여주실래요?"
포트폴리오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지막 페이지, 내가 가장 애정을 쏟은 독창적인 세계관의 단편 애니 스토리보드를 보던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거... 당신이 만든 거예요?"
"네." 내 목소리는 작았다.
"이 케이크 장면...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요?"
나는 잠시 당황했다. "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만든 케이크예요. 그때의 감정을 캐릭터에 담고 싶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김 이사님, 잠시만요!" 그녀는 옆에 있던 남성을 불렀다. 그들은 내 포트폴리오를 놓고 무언가 속삭였다.
"실은,"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애니메이션. 당신의 스타일이 딱 맞을 것 같네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요?"
"3개월 계약으로 시작해 볼래요? 만족하시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9개월의 좌절, 200장의 이력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도착한 이메일을 확인하고 나는 숨을 멈췄다.
"김지후 님,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아닌 '드림 웍스샵'에 채용되셨습니다. 저희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가 아닌, 캐릭터 상품 판매점입니다."
화면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맞았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제 캐릭터를 그리는 게 아니라 파는 사람이 되는 건가. 그런데 메일 마지막에 덧붙여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P.S: 귀하의 독창적인 케이크 캐릭터 디자인을 본사 디자인팀에 추천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포트폴리오를 추가로 보내주세요."
전철이 터널로 들어가며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웃고 있었다. 취업은 했지만 꿈을 향한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때로는 원하는 길이 아닌 곳에서 기회는 시작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