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여사친: 지우지 못할 경계선
취업 준비생 김준호의 책상 위에는 면접 질문지와 함께 마지막 메시지가 열린 채 방치된 휴대폰이 놓여있었다. "오늘 저녁도 스터디야? 진짜 이럴 거면 그냥 솔직히 말해. 너 나 안 좋아하는 거지?" 여사친 서민지의 메시지였다. 준호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면접 준비에 집중해야 했다.
그들의 관계는 대학 신입생 때부터 시작됐다. 같은 과 동기로 만나 취업 준비를 함께 하는 지금까지, 누구도 경계선을 넘지 않는 묘한 균형을 유지해왔다. 준호는 민지를 좋아했고, 민지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취업이라는 현실적 벽 앞에서 감정에 솔직해질 용기는 없었다.
"너 이번에 붙으면 고백할 거야." 술자리에서 민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블라인드 채용 과정에서 서로의 취업 소식만 기다리는 기묘한 상황. 준호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민지의 진지한 눈빛은 농담처럼 보이지 않았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면접관 중 한 명이 낯이 익었다. 지난주 민지가 면접 봤던 회사의 인사팀장이었다. 그는 준호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혹시 서민지 씨를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준호는 얼어붙었다. 솔직하게 답해야 할까, 아니면 모른다고 해야 할까.
"네, 같은 과 동기입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녀가 당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더군요. 자기소개서에 롤모델로 당신을 언급했습니다."
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지가 이미 이 회사에 합격했다는 뜻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휴대폰이 진동했다. 합격 문자였다. 준호는 주저 없이 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도 붙었지? 인사팀장님이 네 얘기를 하시더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침묵. 마침내 민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나 다른 회사 갈래. 어제 최종 합격했어."
준호는 멍해졌다. "왜?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회사잖아."
"그건... 네가 떨어질까 봐. 둘 다 같은 회사면 여사친으로 남게 될까 봐..."
준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취업이라는 핑계로 오랫동안 숨겨온 감정의 무게를. 민지의 롤모델이라는 말은 거짓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녀는 자신이 가장 원했던 회사의 합격을 포기했을까?
그렇게 준호와 민지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각자의 시작을 맞이했다. 결국 둘 중 누구도 경계선을 넘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 사이에는 취업이라는 핑계도, 여사친이라는 안전한 레이블도 없었다. 오직 솔직한 마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